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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 마케터는 왜 지옥에 갔는가?

2025.07.29 09:33

송디AI

조회수 91

댓글 1

1. 다시 뜬 공고

또였다.
그 문장이 내 눈을 찔렀다.

“동남아 토토 마케팅 인재 모집
숙식 제공, 월 1,000만 원 보장
진짜 돈 벌 사람만 클릭하세요.”

스크롤을 멈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면 위에서, 내 과거가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손에 쥔 마우스를 내던졌다.
마우스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2. 출국 전야

그땐 정말, 절박했다.
이력서는 회신이 없었고
통장엔 잔고 43,000원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 수술비가 밀렸고,
계약직이었던 나는 세상에서 벗겨지는 듯했다.

그 광고는 이상하게도,
나한테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진짜 돈 벌 사람만.”

그 밤,
나는 여권을 꺼냈다.
3일 후,
나는 마닐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날 맞은 남자는 말쑥한 정장 차림에
한 손으론 에어팟을 만지작거렸다.

“폰 줘요. 유심 갈아끼워드릴게요.”
“아, 괜찮아요. 제가 직접”
“아뇨, 현지선 복잡하거든요. 제가 해드릴게요.”

그 남자가 내 스마트폰을 가져가는 순간,
나는 알았다.

돌려주지 않을거라는것을.


3. 그곳

첫 업무는 광고 배너 수정이었다.
반나체 여성, 빛나는 칩들,
그리고 초록색 3단 굵기 폰트로 씌워진 문장.

“신규 첫충 300% 환급!
당일 환전, 실시간 24시간 운영!”

“이런 디자인… 누가 클릭해요?”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옆자리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너 마케터라며?
여기선 클릭률이 생존율이야.
감성 따위로 버티면…
진짜 골로 가.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책상 서랍에서 쇠파이프를 꺼내
내 허벅지를  내리쳤다.

무릎이 꺾였고,
모니터가 흐릿해졌다.
이곳은 회사가 아니었다.
이곳은 수용소였다.


4. 지옥의 풍경

  • 사무실엔 CCTV가 네 대.

  • 화장실은 오전 10시와 오후 4시, 단 두 번.

  • 점심은 투명한 국과 붉은 밥.

  • 캡처 프로그램은 10초마다 내 화면을 찍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지 않냐?”

같이 입사한 20대 남자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꺼냈다가 사라진 사람을
이미 여러 명 봤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한 명 도망갔다가,
마닐라만에서 시체로 떠올랐대.


5. 그녀, 나미

처음 그녀를 본 건
배너 수정실에서였다.
말없이 모니터만 바라보는 사람.
살아 있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눈.
죽음을 디자인하는 사람.

“얼음 넣었어요.
턱, 많이 부었더라고요.”
그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원래는… 마케터였어요?”
“응. 콘텐츠 플래너.
브랜드 카피 쓰던 사람.”
“저는… BX 디자이너였어요.
지금은… 야동 사이트 썸네일 만드는 중이죠.”

그녀는 웃었고,
나는 아팠다.
웃음이 너무 예뻤으니까.


6. 밤, 두 사람

CCTV 없는 백업 서버실.
유일하게 안전한 공간.
우리는 그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미지근한 필리핀산 맥주.
눈물보다 쓰고, 현실보다 무력한 술.

“도망가요.

당신은 살아야 돼요.”

“같이 가요.
우리가 같이 나가서 이걸 터트리면…”

“난 못 가.
내 동생이 여기 있어.
도망가면…
그 애부터 죽일 거야.


7. USB

그녀가 조용히
검은 USB 하나를 내게 건넸다.

“여기, 우리가 만든 랜딩 페이지들.
운영 서버 주소, 내부 회계파일,
한국에 있는 위장법인 계좌까지 전부 있어.”

“이걸 어떻게 모았어요?”
“사이트에 백도어를 심어두었어.”

“…함께 가요.
이걸 같이 세상에 알려요.”
“그럼 넌 죽어.
그쪽은… 아직 누가 기다리잖아.
나는 이제,
누군가를 기다릴 이유도 없어.


8. 탈출

그날 밤,
나는 컨테이너 밑에 숨었다.
짜장면 박스와 쓰레기 더미 사이.
27시간,
숨도 못 쉰 채,
바닷물 냄새 속에서 기절을 두 번 했다.

세 번째 눈을 떴을 땐
인천항이었다.

그녀는 없었다.
하지만 내 손엔
그녀가 준 USB가 있었다.


9.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좁은 원룸.
바닥엔 빈 술병과 깨진 마우스가 굴러다니고,
내가 지켜보는 모니터엔 또다시 그 공고가 떠 있다.

“동남아 토토 마케팅 채용 중
숙식 제공, 월 천만 원 보장
진짜 돈 벌 사람만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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