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만년 팀원이고 싶어요."
"승진은 딱히 안 끌려요."
요즘 직장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다, 실무자로만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최근에도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하는데 상대 기업의 연차가 높은 매니저에게 "매니저님, 신입 매니저님도 잘 가르쳐 주세요" 라고 했더니 "저는 선임도 아니고, 모두가 수평이라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아요. 제게 주어진 일만 하고 싶어요." 라고 답변하는 걸 듣고, 최근 읽었던 기사와 비슷한 의견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과거에는 조직에서의 승진이 곧 성공이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자라는 타이틀은 일종의 명예와 보상의 상징이었죠. 그러나 요즘 관리자는 '멍에'와 '벌칙'으로 보이는 듯합니다.
오히려 지금은 팀원으로 남기를 원하거나, 커리어와 분리된 '개인 브랜드'를 따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더 뚜렷하게 보이거든요.
영국 인사전문기업 '로버트 윌터스'의 최근 조사를 보면 Z세대 직장인의 52%는 '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늘어나는 스트레스에 비해 보상이 크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고, '개인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젊은 세대의 리더십 기피 현상은 분명한 신호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재의 리더십 회피 현상은 게으름이나 책임 회피라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문화적 신호일 수 있죠.
관리자가 되기 싫다는 진짜 의미
요즘 '컨셔스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스스로 승진의 사다리를 내려놓은 움직임'으로 해석되는데요. 수직적인 리더십을 갖는 대신, 협업의 플레이어로 남기를 원하며 성과보다 경험과 균형을 더 중시하고 싶은 젊은 세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이 회피하는 것은 '역할'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이를테면 '팀원은 말없이 따라야 하고, 관리자는 책임과 보고에 시달리는 구조, 이러한 틀에 박힌 구조 속에서는 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는 거죠.
그래서 이들은 성과급이나 명함에 대한 타이틀보다 자율성과 몰입을 경험하기를 기대합니다. 딜로이트가 2024년에 발간한 <MZ세대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MZ세대 응답자 중에서 74%는 '관리자 승진보다 기술력과 자유를 기반으로 한 커리어 개발을 더 중요시한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관리자라는 자리는 어렵고 버겁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닌 번아웃의 상징이 되어버렸다는 점은 문제죠.
2021년 기준, 미국 중간관리자의 35%는 '번아웃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중간에 끼어 윗세대와 아래 세대의 소통을 책임져야 하는 그 자리, 누구나 오르던 사다리는 이제 빈자리를 남기고 있습니다.
변화의 진짜 원인은 사람이 아니라 조직 시스템에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편 가르기로 문화를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죠. MZ세대는 그래, 알파세대는 이래, Z세대는 저래 이런 식으로 아주 쉽게 세대론으로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애들은 책임지기 싫어해, 위로 올라갈 욕망이 없어."라고 말하지만, 정작 원인은 사람보다 조직 시스템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저만해도 2000년대 초반 직장 생활을 할 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많았거든요. 남녀, 학교별로 편을 가르고, 여성으로서 올라갈 수 없는 여러 제약 조건 등이 상당했어요. 누구도 그것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지 못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바뀌었고, 20년 전보다 현재의 직장 생활은 눈에 띄게 좋아졌죠.
하지만 여전히 수직적 구조와 낡은 리더십이 잔재해 있습니다.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감시, 보고, 책임, 실적 관리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러한 감시와 관리보다는 지원, 서포트를 통해 함께 일하는 문화를 만들기를 원하죠. 그래서 그들에게 관리자가 될 이유는 '성장시키기 위한 관리자'가 아니면 찾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성공의 의미 자체가 바뀐 것도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돼요. 예전에는 직장 내에서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임원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승진과 보너스는 업무에 있어 대단한 동기부여가 됐죠. 하지만 요즘 성공은 제각각 다른 방식의 접근으로 고려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건강한 삶, 워라밸에 대한 키워드가 중요시되고 있죠.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 최근 '욕망의 수축'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도 큰 집, 고액 연봉보다 마음의 평안, 자기계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변화는 결국 "조직이 개인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더라."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IMF,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을 거치며 조직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고, 일보다 자기 삶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 거죠.
마케터의 시선
지금의 젊은 세대는 리더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전 시대의 리더십'을 거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들은 '감정이 닳고, 밤에도 메일을 확인하고, 팀원의 이탈까지 책임지는 관리자'가 아니라 '성장을 도와주는 멘토', '정서적으로 안전한 코치형 리더'를 원합니다.
막상 이런 내용을 쓰다 보니, 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네요. 나는 리더로서 성장을 도와주는 멘토일까? 혹시 주말 상관없이 일을 몰아쳐서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지시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만 저조차도 그런 조직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왜 나는 그것이 어려운지 자문하게 되네요.
저는 오랜 시간을 워커홀릭으로 지냈고, 오래된 낡은 조직 시스템을 통해 사회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어쩌면 기존의 모습이 익숙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지금의 조직생활에서 가끔 "응?"하는 의문점이 생길 때도 꽤 있고요.
저조차도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조직생활에서 과거-현재가 함께 뒤섞인 조직원들이 더 많은 소통, 더 많은 문제 해결을 해야 함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이러한 변화는 조직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마케팅 관점에서 볼 때도 최근의 소비자들은 끌려가는 모습이 아니라 선택하는 소비자가 됐고, 경험을 함께 만든 브랜드에 더 집중하거든요. '이건 꼭 사세요'의 접근이 아닌, '여러분도 이 생각해 보셨죠?'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브랜드의 경험을 소비자와 함께 쌓아 나가는 브랜드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다는 점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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