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잘해드립니다."
진우는 습관처럼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입버릇처럼 외는 이 말 한마디면, 고객들의 눈동자는 언제나 반짝였다.
마케팅이든 영업이든 다 필요 없었다.
상대가 원하는 건 그저 안심이었다.
그 안심을 판다는 생각에 진우는 늘 자신감 넘쳤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 말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비수가 될 줄은.
세 달, 그 마법 같은 약속이 늘 깨지던 시점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습한 7월의 공기가 짙게 내려앉았다.
에어컨의 싸늘한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진우는 연신 입술을 깨물며 책상 위 담배 한 개비를 손가락 끝으로 굴리고 있었다. 피지도 않는 담배였다.
옆자리 영민이 키보드를 세게 누르다 못해 휙 돌았다.
"형, 또 터졌어요. 진짜 내부에서 일 못 해서 계약 세 달도 못 버틸 것 같아요."
"알아."
"알긴 뭘 알아요, 형. 매번 말만 그렇게 쉽게 던지고 뒷처리는 우리가 하는데."
진우가 짜증 섞인 숨을 내쉬었다.
"야,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 뻔히 알면서 뭘 고민해? 일단 안심부터 시키고 계약 따야 할 거 아냐."
"형 말대로 일단 계약 따면 뭐해요. 결국 마케팅이 성과를 내줘야 계약이 유지되지."
"그래서 내가 마케팅까지 해야 해? 난 영업이야."
영민이 눈썹을 찌푸리며 비꼬듯 대답했다.
"그 영업이란 게 대체 뭔지 궁금해서 그래요. 맨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나면 끝인가."
진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말문이 막혔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며칠 후, 고객사 대표와 마주 앉은 카페.
에어컨이 과하게 돌아가는지 아이스커피 맛이 유난히 썼다.
"진우 씨. 우리가 바란 건 결국 실적이었어요. 근데 지금 돌아가는 꼴이… 이게 뭡니까?"
진우는 씁쓸히 웃었다.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저희가 약속드린 게 구체적인 숫자는 아니었잖아요. 저희가 최선을 다한다고…"
대표는 말을 잘랐다.
"그럼 뭘 약속한 겁니까? 그냥 ‘잘해준다’ 이 한 마디뿐이었죠?"
진우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속이 더 쓰려졌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살벌했다.
대표와 팀장, 동료들의 표정이 냉랭했다.
대표의 날카로운 말이 날아왔다.
"아니, 마케팅 영업팀은 도대체 뭘 파는 거야? 진우 씨, 회사에 도움이 되긴 합니까?"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던 모욕이었다.
진우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알겠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
순간 공기가 굳었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진우는 회사를 떠났다.
그날 저녁, 진우는 무작정 걸었다.
습하고 더운 7월 밤거리를 걷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무심히 스크롤하는데 ‘아이보스 마케팅 강의’라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성과 내는 마케팅은 다릅니다. 아이보스가 알려주는 진짜 마케팅 비법, 지금 확인하세요!』
문구가 마음에 박혔다.
손가락이 화면 위 수강신청 버튼에 머물렀다.
"이걸 들으면... 달라질까?"
하지만 진우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망설임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자신이 실패했던 게 결국 마케팅이었는지, 아니면 영업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였는지 헷갈렸다.
"마케팅… 제대로 배워야 하나?"
중얼거리는 그의 말이 공허한 밤공기에 녹아들었다.
진우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돌이켜보니 그는 늘 눈앞의 계약만 봤다.
고객의 문제, 회사 내부의 역량, 이런 것들은 제대로 본 적 없었다.
그저 '알아서 잘 될 거야'라고 주문을 걸듯 되뇌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진짜 무엇을 팔았는지, 혹은 팔지 못했는지를 생각했다.
“그래, 결국 내가 판 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의 입맛은 아직 쓰디썼다.
늦은 밤, 진우는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엔 아까 본 ‘아이보스 마케팅 강의’가 여전히 떠 있었다.
손가락이 다시 버튼 위를 맴돌았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걸 눌러서 달라질까? 아니면 또… 똑같은 반복인가?"
진우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고민 자체가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마침내 결심한 듯 천천히 화면을 터치했다.
『수강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화면의 메시지를 바라보며, 진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좀 달라질 수 있겠지."
그의 입맛엔 아직 쓴맛이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밖엔 여전히 무거운 7월의 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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