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릭률보다 중요한 것
강지유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너무 잘해서 탈이었다.
“이건 CTR 5.7% 나왔고요, 전환율은 기존보다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이 지표만 봐도 이 카피가 훨씬 우수하다는 게 보이죠.”
지유는 손끝으로 레이저 포인터를 누르며 말했다. 회의실 정면, 프로젝터에는 차트와 수치가 빼곡했다. 데이터는 완벽했다. 완벽할 리 없었지만, 그렇게 보이게 하는 건 그녀의 특기였다.
하지만 그녀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클라이언트 담당자인 서진 과장은 단 한 마디만 했다.
“…톤앤매너는 고려하신 거죠?”
지유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아, 물론이죠. 다만, 브랜드 감성보다는 전환 성과가 더 중요한 시점이니까요. 소비자는 감정보다 문제 해결을 원하거든요.”
서진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그 표정은 뭔가 씹다 만 듯한 표정이었다. 씹고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한 얼굴.
🕰️ 설명충의 저주
지유는 커피 머신 앞에서 물을 채우다 말고 동료 수빈에게 물었다.
“서진 과장, 왜 저렇게 반응이 없지?”
수빈은 한 모금 마시고, 대꾸했다.
“설명이 너무 많았던 거 아니에요? 좀... 가르치는 느낌?”
“그건 정확한 정보 전달이죠.”
“음... 교수님 느낌?”
지유는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말로 지는 건 싫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회의실에서 무표정하게 있던 서진의 얼굴이었다.
🕰️ 맞지 않는 리듬
지유는 1:1 미팅을 요청했다. 자신은 진심이었다. 잘 해보자는 마음, 더 잘하자는 마음.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더 열심히 준비했다.
20장짜리 PPT.
“이 부분은 브랜드 페르소나별로 정리한 유입 동선이고요, 이건 CTA 문구 A/B 테스트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 슬라이드는...”
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살짝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지유 팀장님.”
“…네?”
“혹시… 제가 마케팅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지유는 얼어붙었다.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설명 차원에서…”
“저, 마케팅 석사예요. 브랜드 쪽에서 캠페인도 몇 년 했고요.”
“…죄송합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서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듣고 싶을 때 듣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건 강의고, 협업이 아니에요.”
지유는 그 말을 곱씹으며 회의실을 나왔다. 설명하려는 자신이, 사실은 상대를 믿지 못한 것이었단 걸 그제야 깨달았다.
🕰️ 댓글 하나가 준 수업
캠페인은 일단 집행됐다. 지유는 팀원에게 방향을 바꿔 요청했다.
“숫자 말고, 고객 후기 좀 정리해줘. 그냥... 사람들이 어떤 말 남겼는지.”
정리된 댓글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 광고 보고 엄마한테 보냈어요. 매년 겨울마다 발 시려운 엄마 생각나서요.”
그 말 한 줄이 가슴을 콕 찔렀다.
그제야 지유는 깨달았다. 설명보다 강한 설득이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 한 문장이, 데이터 열 장보다 강하다는 걸.
🕰️ 비 오는 회의실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수요일 아침. 회의실 창에 물방울이 점점이 맺혀 있었다.
지유는 일찍 도착해 조용히 인쇄물을 꺼냈다. 오늘만큼은 슬라이드 없이 가기로 했다.
서진이 들어왔다.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털고,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PPT 없습니다.”
지유는 그저 A4 한 장짜리 요약 자료를 건넸다. 거기엔 숫자와 함께 고객의 목소리도 실려 있었다.
캠페인 결과 요약
- CTR(클릭률): 3.8% (+58%)
- 평균 체류 시간: 23초 (기존 9초)
- 브랜드 키워드 검색량: +38%
- 감성 댓글 증가율: +230%
그리고 상단에 적힌 문장 하나.
“따뜻함은 설명할 수 없지만, 누구나 느낀다.”
그 문장은 이번 캠페인의 핵심 감정을 요약한 것이었다. 지유는 고객이 남긴 댓글 중 하나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고, 그것이 단순한 피드백이 아닌 '브랜드 경험'의 본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보고서 첫 줄에 그 말을 올려두었다.
지표와 숫자가 먼저가 아니라, 감정이 먼저인 자료. 지유는 처음으로 정성적 데이터가 전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제시한 셈이었다.
이 한 문장이 있었기에 그 아래의 수치들도 힘을 얻었다. 체류 시간 23초, 댓글 전환률 230%, 브랜드 검색량 38% 증가… 모든 것이 단순히 '성과'가 아니라, '공감이 행동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서진은 자료를 조용히 읽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 마치 마음속 어딘가에 닿은 듯한 얼굴이었다. 잠시, 눈길을 그 위에 머물다가 입을 열었다.
“이 카피, 고객이 쓴 댓글에서 따오신 거죠?”
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광고 올리고 나서 한 유저가 남긴 문장이에요. 이번엔 숫자보다 그 말이 먼저 보였어요.”
서진이 A4용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캠페인 분석 방식도 달라졌네요. 정성적 지표까지 분석해서 구조화한 건 처음이에요.”
“단순히 감동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댓글→체류 시간→전환률’로 이어지는 흐름을 데이터로 뒷받침해봤어요. 고객의 감정도, 전환의 여정 중 하나잖아요.”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이번 캠페인, 숫자와 감정이 같이 있었네요. 브랜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였는데.”
지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캠페인 2차 진행은?”
서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리고… 이번 주말에 올루미 전기장판 신제품 들어온대요. 직접 보면 어떤 온도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지유는 웃었다. 짐짓 장난스레 물었다.
“제품 설명은... 안 하실 거죠?”
“대신... 온도는 조절해드릴게요.”
회의실 너머로 빗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마케팅도 관계도, 설명보다 온도가 먼저였다.
인사이트 요약
설명은 내가 똑똑하다는 증명이 아니라, 상대를 믿는다는 표현이어야 한다.
고객은 무지하지 않다. 고객은 단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공감 콘텐츠도 성과가 난다. CTR, 체류 시간, 감성 키워드 언급, 댓글 전환률… 정량화 가능한 감성 지표를 KPI로 포함시켜야 한다.
브랜드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로 설득된다. 말 많은 사람보다, 가만히 들어주는 콘텐츠가 더 멀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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