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아지는 글이기에 옮깁니다... 보스님 모두 활기찬 한주되세요^^*
출처: 다음게시판 2006 독일 나도한마디 --프랑스전 토론방
동경에서 본 대한민국 - 프랑스전 by 테츠 (펌 )
이것이 축구다. 한국-프랑스전은 이렇게 압축된다. 다시 말하겠다. 이것이야말로 축구다. 축구란 이렇게 희열을 선사한다. 이 희열은 2002년과 그 시간적 성질을 달리하며 여타 스포츠의 공간적 희열과도 성질이 다르다. 2002년의 화려함과 공격축구, 끊임없는 중원의 압박만을 생각했던 당신이여 눈을 떠라. 2006년의 한국국가대표팀의 축구야말로 진정한 축구의 레토릭에 가깝다.
끊임없이 참고, 끊임없이 버틸 줄 알며, 단한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시키는 것. 아니, 결정적으로 쉽게 지지 않는 것. 이것이 강팀의 조건이며 나는 감히 한국국가대표팀이 강팀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자부한다. 오늘의 프랑스전은 두번의 감독 경질을 경험하고, 한국적, 아니 아시아적 상황에 맞지 않다는 혹평까지 들어왔던 포백시스템으로 세계의 강호 뢰블레에 당당히 맞서 일구어낸 무승부다.
당신은 잉글랜드의 제라드, 혹은 체코 로시츠키의 중거리슛이나 얀 콜러의 자로 잰듯한 헤딩슛만을 슛으로 인정하는가? 아니다. 축구는 바로 오늘 보여준 박지성의 엉거주춤한 밀어넣기로 이루어진다. 이 엉거주춤에 축구팬들은 환호하며 또 울음을 터뜨린다. 이 엉거주춤은 포기하지 않은 자만이 노릴 수 있는 영광이며, 또 핏치 군데군데 파여진 잔디가 상징하는 축구의 매력이다.
오늘 나는 동경의 밤하늘에서 한국-프랑스전을 보았다. 신주쿠 오오쿠보의 쇼쿠안 도오리는 500여명이 모였고, 그들은 경기가 끝난 후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가슴에 새긴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모두들 대한민국을 외친다. 골을 넣은 이는 박지성이지만, 그 골을 어시스트한 이는 수많은 안티(?)를 거느리고 있는 조재진, 그리고 크로스는 한때 역주행이라 놀림받았던 설기현이지만, 그 모든 것은 이제 모두 기억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같이 경기를 보았던 프랑스인 아도르 페레스는 "한국팀은 모든 면에서 강하며, 2002년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팀이 되었다"며 "진정한 강호"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쓸쓸히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들은 다시 환호했다. 2006년 6월 19일 신주쿠 오오쿠보. 여기는 다시 우리들의 해방구가 된다. 신주쿠 경찰서의 100여명의 제복경찰들도 결국엔 포기한다. 그때도 그랬다. 2002년 똑같은 그 자리를 "오늘" 우리들은 점령했다. 4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연례행사. "오늘"만큼은 우리들의 땅, 신주쿠.
일본경기가 끝난 후 합세했던 프리 저널리스트 타카시마는 한국팀에 감복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정말 한국팀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팀의 무승부와 질적으로 다른 무승부다. 한국선수들의 투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라붙는 저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응원을 멈추지 않는 서포터들. 어떻게 이런 멋진 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한국이야말로 아시아의 넘버원의 정신, 체력, 투지, 그리고 골을 넣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오늘 경기의 MOM은 23명 전원이다. 토고전에서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이호의 프레싱, 홀딩능력은 탁월했으며, 김영철의 수비수적 능력은 경기를 진행하면서 더욱더 향상되어 가고 있다. 기존의, 이른바 2002년 멤버들은 경기운영 방식을 알고 경기에 임했다. 무엇보다 갈수록 나아지는 선수들의 움직임에 갈채를 보낸다.
이번 월드컵의 시합들, 아니 간단하게 앞서 치뤄졌던 브라질-호주전을 보자. 전반을 잘 막아내다가 후반에 무너진다. 어제 펼쳐졌던 체코-가나전의 후반전에서는 체코선수들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 극단적인 오프사이드 전법이 그것을 반증한다.
그런데 한국축구를 보라. 전반에 1점을 먼저 주고서도 반드시 후반전 그 경기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안정환의 투입으로 그 단조롭게만 보였던 킥앤드러쉬 전법이 좌우 측면을 이용하는 분위기로 바뀌더니만, 설기현의 투입으로 다시 토고전과 비슷한 포메이션 4-2-4가 등장한다. 그리고 물만난 물고기처럼 안정환이 활개친다.
조재진의 포스트 플레이에 프랑스 수비진은 따라오지 못할 무렵, 설기현의 크로스가 올라갔고, 조재진은 능숙하게 떨구어 주었다. 문전으로 쇄도하는 한국선수는 두명. 골문 오른쪽에 치우쳐져 있던 프랑스 수비는 두명중 한명은 커녕 골대 중앙 커버플레이조차 되지 않는다. 전후반 81분 내내 그들을 괴롭혔던 조재진의 포스트 플레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남은 10분여의 시간. 공돌리기도, 백패스도 나오지 않는다. 애달은 프랑스와 공방을 펼친다. 기진맥진 상태에서 이른바 뻥축구만 나오는 것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공격과 방어.
한국축구는 이렇게 어울릴 줄 안다. 몰디브를 만나면 몰디브 수준으로, 베트남을 만나면 베트남 수준으로, 노르웨이를 만나면 노르웨이 수준으로, 그리고, 프랑스를 만나면 프랑스 수준으로. 결정적으로 절대 지지않는 축구. 이것이 바로 "강팀"만이 선사할 수 있는 축구다.
토고전 볼돌리기는 이제 잊자. 프랑스전에서 보여준 축구, 그리고 앞으로 스위스전에서 보여줄 한국축구, 나아가 결승 토너먼트에서 보여줄 한국축구를 기대하라. 한국축구는 여전히 비밀스럽고 신비하며, 아직도 우리들에게 보여줄 수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그들, 아니 우리들의 전진에 오직 승리만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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