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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자가 사는 법

2023.03.06 14:24

즐거운예감

조회수 1,353

댓글 1

최근에 명예퇴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금융업체에 다니는 분은 최근 임금피크제 연령이 돼서 5년치 급여를 받고 퇴직할 것이냐, 아니면 기존 급여의 70%를 받으면서 계속 직장에 다닐 것인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합니다. 동년배가 10여 명이 넘는데, 대부분 명퇴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보직에서 물러나고, 혼자서 하는 담당의 역할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직책에서 물러난다는 건 상급자의 권한을 내려놓는 거라 지금까지 부하들이었던 직원들과 잘 지내기가 쉽지 않겠다는 판단때문입니다. 그만큼 남자들의 사회는 위계질서가 강합니다. 사회적인 지위를 박탈당한다는 걸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명퇴를 신청하지 않은 일부의 사람들도 대기업의 명함이라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매일 어딘가로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소속감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저는 명퇴하는 분들의 이야기에 짠해졌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이런 얘기가 오갔다고 합니다.

"김치 공장에 가서 월 2백만 벌면 되지. 거기 있는 아줌마들이랑 하루 종일 재미나게 수다 떨면서 일하면 될 거야. 난 욕심 없어."

이 말을 들은 다른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판타지 소설 쓰고 있네. 일단 김치공장에서 너같이 허약한 사무직 출신 50대 중년 남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 밖에 나가면 너같은 놈은 월 2백이 아니라 50도 벌기 힘들다. 너같이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은 지구를 떠나는 게 더 나을 거야." (웃음)

자조 섞인 중년 남자들의 수다가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다른 동료는 '친구가 하는 사업에 투자해서 서로 협업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금융권이라 명퇴금으로 4~5억 정도 받겠지만, 안정된 직장에서만 살아온 그들에게 사회 적응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찰떡같은 협업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서로의 장점을 조화롭게 발휘하면 좋겠지만, 사업이란 게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 친구가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간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온 명퇴한 친구와 눈높이를 맞추는 게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퇴직 전에 1~2년 간의 은퇴자 교육을 하지만, 대부분 겉핥기입니다. 인큐베이팅이라기 보다는 이론 공부에 머뭅니다. 그러니, 안정적이라고 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그간 유지해왔던 사회적 지위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망한 프랜차이즈가 어디 있던가요? 직원 관리라는 것도 대기업의 팀 조직을 관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조직의 후광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영업자의 사장은 그야말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 직원보다 못하기도 합니다.



저는 화이트 칼라 직종으로 사무직으로 일했던 사람들의 경험과 기획력을 썩이는 게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물론, 현업에서 익힌 경험과 노하우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지식 서비스업 등에서는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본형 작가는 직장에 있으면서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고 했습니다. '본캐'도 중요하지만, '부캐'가 필요합니다.


최근에 변호사로 개업한 친구에게 검사로 있을 때부터 책을 한번 써보라고 했습니다. 검사 직무의 특성상 판사에 비해 한계는 있겠지만, '부캐'를 일찍부터 시도해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세상 편한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는 사회 적응 훈련을 하라고 했습니다. 낯모르는 커뮤니티에 가는 건 힘드니, 제가 운영하는 모임에 참여하라고 했습니다. 우선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는 역사투어 모임부터 권했습니다. 

이 모임에는 중년의 여성분들이 많습니다. 아이 양육과 교육, 남편 뒷바라지에서 놓여난 분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커뮤니티가 '해방구'입니다. 그런데, 남자 참가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다들 골프, 아니면 술을 마시거나 등산만 해서일까요? 친한 남자들하고 등산하고, 하산해서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는 쾌감이야 비할 바 없지만, 우정의 친교를 넘어선 사회 생활이 필요합니다. 

공부가 꼭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간 직장생활에 붙들려 하지 못했던 세상 공부, 인생 공부, 사람 공부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일단 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직접 임대료를 내고, 운영하는 건 부담이니 다른 사람들이 만든 아지트를 활용해도 됩니다. 거기에는 인생 선배들이 있고, 성공 경험과 실패 경험들이 가득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바로 그때가 늦었다'는 개그맨 박명수의 어록이 있지만, 늦은 때는 없습니다. 혼자서 노는 게 재미가 덜하듯이 혼자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재미가 덜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공부하고 세상을 알아가다 보면, 취미도 생기고, 벌이도 생깁니다. 저는 앞에서 말한 명퇴한 분들에게 자신만의 놀이터와 아지트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고산 등정을 할 때 고지 적응 훈련을 하듯이 평지 적응 훈련도 필요합니다.

저는 대학 친구들한테 이런 말을 해줄 생각입니다. 

"그간에 너희들이 힘들게 가정 건사하고, 직장에서 힘들게 일할 때 나는 함께 놀 수 있는 우리들의 놀이터와 아지트를 만들었다. 여기 와서 놀다 보면 인생 후반기도 재밌지 않을까?"

친구들의 대답이 궁금한가요? 오늘 저녁 10여 명이 모인다는 모임에 가보고, 그 화답은 내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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