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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짬이 자장면을 좋아하는 이유.

2006.06.09 23:45

알짬

조회수 7,309

댓글 20

저는 성격이 유달라서 어지간한 분께는 "님"자를 붙이지 않습니다.
온라인 상에서의 "님"은 존칭의 의미가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누구누구"氏"와 마찬가지 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서 유일하게 형호칭의 대우를 받으시는 분이 두분 계십니다.
장형님과 박형님이십니다.
이제껏 굴곡이 많았던 터라,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기던 터도 있었고
형님들 모시고 제법 술잔이나 대접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힘든 고비를 넘기던 시기엔 집안의 어른들이나, 다른 선후배들을 대할 적이면 늘상 듣는 안부인사들...
"요새 하는 일은 잘돼냐" "밥은 제때 챙겨먹고 다니냐" 등등....
별 뜻없는 안부인사에도 괜한 울컥증이 생길 때에도,
장형님과 박형님은 염려스러운 안부말씀도 없이 그저 저를 지켜보기만 하셨습니다.

다른 분들의 염려에는 신경질적으로 울컥대면서도
늘 무덤덤한 두분께는 서운하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편하게 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좋지 않을 일을 겪으면, 괜히 그분들 사무실에 들려서 한동안 투덜대기도 하고, 억지로 농담쌈치기도 하고..그렇게 지냈습니다.
솔직히 가끔씩은 식사시간에 맞추어 들려서는, 지나는 길에 그냥 들렸다는 듯이 능청을 떨며 자장면 한그릇얻어먹으며 한끼니를 때우기도 하였습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야...그 뻔한 눈치를, 그 두 형님들이 왜 모르셨겠냐마는,
그분들의 심정이야 왜 남달리 저의 근황이 염려스럽지 않으셨겠냐마는...
늘상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시고 무덤덤하게 대하여 주셨던 것이...
뒤늦게야 고마움을 느끼고..작년부터 "형"자 뒤에 "님"자를 깍듯이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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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굴곡이 많았던 터라,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기던 터도 있었고
아우들 이끌고 제법 술잔이나 돌리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별뜻없이 그저 아우들이 좋아서 편하게 어울려 지내었던 것 뿐이었는데,
얼마전 한 아우가 찾아와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IMF 니 장기불황이니 국가부도니 하는통에 서른이 되도록 변변한 취업을 못하여
공사장의 막노동을 하다가 작년가을부터 타지역의 공장생산라인에 장거리 출퇴근근무를 하게 된 아우입니다.

"행임..제가 와 행임조아하는지 암니꺼.."
"징그럽그로 갑짜기 와그라노...모린다 임마야...니속을 내가 우찌 아노..."
"지가예...예전에 집안에 눈칫밥묵고 뒹굴때에, 우리 큰행이 내를 끄실꼬 나가가꼬...
다 큰넘이 집안에서 눈칫밥 묵는게 얼마나 살로 가긋냐믄서 삼계탕을 사주데예..."
"문디 자슥 호강했네..그래서 와?"
"삼계탕은 잘 얻어묵고 어디 갈데가 없어서리 그날 오후에 행님 사무실에 놀러갔다 아임니꺼"
"문디 니가 내 한티 놀로 온적이 한두번이가..."
"근데예...그날 지가 갔을때에 행임이 그때꺼정 점심을 몬묵었다믄서 같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내 끄실꼬 짱께집엘 갔거등예..."
"문디...삼계탕 잘 쳐묵고 내한티까지 차자와서리 짱께까지 묵었냐?? 니 배도 어지간하다.."
"그 때 제가 순간적으로 무신생각 했냐고 하믄예...아차...어제나 내일이나 찾아올걸....그런 문디같이 못난 생각이 들더라구예..."
"야~~~영악하다 영악해...니가 인자사 세상사는 철이 드는갑다~~이~잉"
"그란디예....그 담에 생각이 행님이 진짜로 이때까지 정말로 점심을 안묵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예...행님 원래 열두시 땡하면 점심묵고 여섯시 땡하면 저녁묵고 밤샘할때 또 야참 챙기드시는 분인데..."
"내가 그날따라 외근이 겹쳐서 점심이 늦었긋지...니도 참 별시럽다~~잉"
"......제가 그 담날부터 공사장 나갔다 아임니꺼...지가 그날 삼계탕을 먹었지만, 속으로 울면서 그 짱께를 다 먹었다는 거 아임니꺼..."
"내가 그날따라 외근이 겹쳐서 점심이 늦었었다꼬 안하나...문디가 지난일 가꼬 별시러븐 소리 다하네..."
"ㅎㅎ..제가 이래서 우리 행임 조아하는 거 아임꺼..."
"ㅉㅉ...니 혹시 그날 짱께 꼽배기 묵었제....."
"예..행임...배가 울렁울렁하는데 뽀대 안낼라꼬 심마이 줬심둬.."
우리는 같이 컬컬거렸고...알짬은 난생처음으로 아우가 사주는 술잔을 비웠습니다.

(새비깡 안주 하나 없이 깡소주 나발불어도 술은 남의 兄된자가 사는 기고
공기밥없이 날계란 하나 풀어넣지 않은 사발면을 먹어도 밥도 남의 兄된자가 사는 기다.
- 알짬어록 1장 1절)


끼니걱정 없을때에 탕수육을 사주었던 선배들보다, 하루하루가 힘겨울때에 못난 자존심 상하지 않게 무뚝뚝하게 자장면 한그릇 시켜주셨던 형님들이 너무 좋습니다.

있음으로 교만하지 말고 없음으로 비굴하지 말자는 다짐이 자꾸 무너지는 요즘에,
조금씩 각박해지는 제 자신을 느끼고 있는 요즘에,
오늘....너무나 귀중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자장면이야기를 오늘 꼭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서른중반의 알짜미에게 아직까지도 최고로 맛난거는 자장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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