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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에는 납이 들어있었다?

2022.09.05 15:47

jinhorus

조회수 1,219

댓글 3

화장품의 역사에서 K뷰티의 역사를 찾다
https://brunch.co.kr/@jinhorus/58
*브런치에서 원문으로 읽으면 훨씬 보기 편합니다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10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인간의 인문학점 관점이 대두되고 있는 지금, 오히려 과거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화장품 관련 역사를 리서치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 대한민국이 화장품 강국이 되기까지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화장품 역사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다.


[1922년 2월 동아일보에 실린 박가분 광고]


K뷰티 최초의 화장품은 1916년에 나온 ‘박가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박승직의 부인, 정정숙 여사가 선물용으로 분을 만들었다가 판매하기 시작한 것으로 박씨 집안에서 분가루를 만들었다고 해 그렇게 이름 지었다.


판매 초기에는 가내 수공업이었다. 그러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공장 형태로 진화했고, 1920년에는 조선총독부 식산국으로부터 화장품 제조등록 1호를 취득하기에 이르렀다. 애석하게도 그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박가분에 납 성분이 발견되며 안전성 이슈가 생겼고, 인기는 한 번에 사그라들었다.


물론 여성의 미적 욕구까지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영화가 인기를 끌며 서양 미인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미제 화장품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결국, 보다 못한 정부는 1961년 화장품을 단속하기 시작했고, 외제품 판매 금지법을 제정하며 전국의 화장품을 전부 소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제화장품이 들어오지 못하는 그 시기에 국내 화장품 기술은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2년에는 화장품 방문판매라는 새 지평이 열렸을 정도. 지금은 익숙한 판매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판매원이 직접 소비자의 집으로 찾아간다는 자체가 센세이션했다. 오죽하면 자금이 부족할 경우 곡식이나 할부를 통해 화장품을 사는 일도 빈번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화장품이 저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1980년 화장품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컬러 TV가 등장하며 화장품 소비가 30~40% 증가한 것. 특히 색조 제품 소비가 두드러졌다.

 

[배우 오드리 헵번]


- 동경의 시작이 화장품의 시작이다. K뷰티 문화도 비슷하다. 과거 오드리 헵번을 보고 서양 미인에 대해 갈망했듯 K컬처와 드라마가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지며 한국 화장품에 대한 해외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우리는 지금 OTT를 기반으로 국경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넷플릭스 회원 수가 대략 10억 명이다. 지난해 돌풍을 일으킨 ‘오징어게임’처럼 이제는 K컬처가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어 융합 콘텐츠 산업이 뜨기 시작했고, 제2의 K뷰티 바람이 다시 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 결국은 인물이다. 한 나라의 문화를 좋아하고 동경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할리우드 스타를 동경했던 것처럼 지금은 많은 사람이 연예인과 유튜버를 동경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튜버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새롭게 동경할 만한 인물이 누가 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예뻐지고 싶은 욕구보다 생존의 욕구가 더 먼저다. 안전성은 필수다. 박가분의 인기가 한순간에 수그러든 것처럼 지난해에는 SPF 이슈로 선크림 시장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화장품은 몸에 직접 바르기 때문에 안전성을 담보하지 않은 제품은 성공할 수 없다.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그 인기가 한 번에 꺾일 수 있다. 앞으로는 안전성에 대한 증명을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환경적인 이슈도 대비해야 하니 기업에서는 과거보다 할 일이 많이 생겼다.


[tvN ‘응답하라 1988’ 캡처]


- 사람들은 선택하는 것을 귀찮아 한다. 가이드를 주는 게 더욱 도움이 된다. 방문판매원이 급격히 늘고 이로 인해 국내 화장품이 성장한 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이드를 원하고 중간에 믿을 만한 사람을 둬 시간 노동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크다. 현재는 인플루언서가 그 부분을 대체하고 있지만, 아직 체계적으로 잡힌 건 없다. 그래서 브랜드에서도 가이드를 줘 제품의 효과를 100% 이상 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 시대와 문명에 올라타야 한다. 소비자의 니즈는 그 시대에 어떤 문명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바뀐다. 1980년 컬러 TV가 등장하며 시장의 전체 흐름이 바뀐 것처럼 말이다. 특히 이 부분을 명심하자. 기술이 발달하는 시기와 도입되는 시기는 항상 괴리가 있다. 웹 3.0, 메타버스, NFT 같은 단어가 매일 대두되지만, 현실적으로 도입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5년 안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기술의 도입이 소비자의 생활패턴을 어떻게 바꿀지 잘 지켜봐야 한다.


***

한국 화장품의 역사를 다뤄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K뷰티가 지금의 영광을 누리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고, 제2의 호황기를 누리려면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배웠다.


얼마 전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봤는데, 여러 가지 산업 중 음식과 화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한다. 또한, 인간은 자신보다 잘 나가고 경제 생활 수준이 높은 나라의 사람을 동경해 그 나라의 화장품을 애용한다. 대한민국이 국내 총 생산 세계 10위, 국민 총 소득 세계 5위의 경제 강대국으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K뷰티의 붐이 꺼지고 호황기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많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원리를 보면 결국은 잘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대적 문명과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니즈는 끊임없이 생기고 그걸 충족시킨 제품이 진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지금까지 K뷰티를 이끌고 왔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시대가 펼쳐질지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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