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나 오늘 시급 계산해봤는데… 딱 11,000원이더라.”
태훈은 치킨 뼈를 뜯다 말고, 단톡방에 폭탄을 투하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그 정도면 이제 사람 대접 받네!”
“와, 그래도 편의점 알바는 이겼네!”
태훈은 치킨 무를 집어 들다가 멈췄다.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잠깐만… 내가 이걸 하려고 이 난리를 쳤나?”
태훈은 ‘자칭 시니어 마케터’ 민호의 인스타 피드를 떠올렸다.
✅⚡️ROAS 1,000%? 그건 그냥 아침 스트레칭이지!⚡️”
✅“월 매출 3억? 내 손가락 운동 수준🔥”
✅ “브랜딩과 퍼포먼스를 동시에? 나에겐 그냥 양손잡기 정도👌”
✅ “마케팅은 감각? 난 태어날 때부터 감각 풀옵션 장착✨”
태훈은 폰을 집어 던질 뻔했다.
그 감각, 혹시 후각 아니냐?
태훈의 뇌 속에서 비명 같은 한줄평이 터졌다.
며칠 전, 브랜드 대표 미팅에서.
대표: “저, 혹시 ROAS가 뭔지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민호: “아~ 그건 Return On Amazing Success의 약자죠. 한마디로 ‘완전 대박!’ 이런 뜻입니다!”
태훈: (속으로) 저건 ROAS가 아니라 Return Of 아무말 Show 아니냐…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와, 역시 전문가!”
태훈은 뇌출혈이 올 뻔했다.
“대박은 개뿔… 진짜 대박은 내 혈압이겠다.”
그날 밤, 태훈은 자정이 넘도록 카피를 고치고, 타겟 세그먼트를 쪼개고, 광고 데이터를 쥐어짜고 있었다.
모니터 위에는 ‘신규 타겟 A/B 테스트’, ‘랜딩 페이지 CTA 개선’, ‘크리에이티브 수정’ 등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배는 고팠지만, 일단 눈앞의 데이터가 더 급했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치킨 앱을 켰다.
“마늘간장 반, 크리스피 반… 콜라는 제로…”
결제를 마치자마자 다시 키보드로 손이 갔다.
30분 후, 초인종 소리가 났다.
태훈은 잽싸게 문을 열어 치킨을 받아왔다.
“오늘의 유일한 행복…”
그는 치킨 무를 하나 집어 먹고, 기름진 손가락을 급히 휴지로 닦으며 노트북을 다시 켰다.
떨리는 손으로 계산기를 꺼냈다.
“자, 오늘 14시간 일했고… 시급이…”
-11,000원.
태훈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내가 이럴라고 4년제 졸업하고, 마케팅 책 100권 읽었나…”
단톡방에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야, 시급은 이제 1.1만 원이다. 인생 승리자 됐다.”
“ㅋㅋㅋㅋㅋ 축하한다 형!”
“오 이제 짜장면 먹을 때 곱배기 시켜도 되겠네!”
태훈은 웃픈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그래도… 나는 가짜 전문가 아니니까…”
치킨은 점점 식고, 치킨 무는 시큼해졌다. 하지만 태훈의 열정만은 아직 뜨거웠다.
잠시 후, 그는 결심했다.
“내일부터 시급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진짜 마케터가 될 거다. 민호 같은 아무말 마케터 아니고.”
그 순간, 폰에 민호 스레드의 새 알림이 떴다.
“🔥오늘도 브랜딩! 마케팅은 예술!🔥”
태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민호야. 너는 예술이나 하고 있어라. 난 데이터랑 전쟁 중이니까.”
그의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 위를 달렸다.
치킨 무는 이미 시큼해졌지만, 태훈의 열정만은 아직 바삭했다.
새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