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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의 작은 브랜드, 작지 않은 스토리·1,925·2019. 10. 22

기름집 방유당이 브랜드가 되는 법

작지만 강한 '스몰 브랜드'를 찾던 중이었다. 우연히 '방유당'이라는 참기름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곧바로 리서치를 시작했다. 그 결과 재미있는 스토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전통기름 로스터리 전문점'으로 포지셔닝한 방유당은 전주 중앙시장에서 '대구 기름집'을 40년 째 운영하던 중이었다. 그런 가게의 진짜 가치를 딸이 먼저 알아보았다. 디자인을 전공하던 딸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해보며 시장성을 타진했다. 솜씨 좋고 센스 좋은 아버지의 기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소주병이 아닌 제대로 된 병에 라벨과 디자인을 더했다. 반응이 좋았다. 가능성을 확인한 딸(손민정 대표)은 언니와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2012년 8월, 분당구 정자동의 조용한 놀이터 앞에서 처음으로 가게문을 열었다.






방유당의 컨셉은 '로스터리 전문점'이다. 커피 원두 로스터리 숍에 착안해 기름을 짜는 기계들을 다시 디자인했다. 그 결과 젊은 사람들이 찾아올 만한 로스터리 숍과 카페 형태의 세상에 없던 기름집이 탄생했다. 인테리어부터 소품 구입, 카페의 메뉴 구성, 온라인 사이트의 기획과 사진 촬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손민정 대표가 직접 했다. 하지만 카페의 메뉴 구성과 요리 스타일링은 전문가의 손에 맡겼다. 방유당에서 쓰는 깨는 모두 충청도 양촌의 양곡장과 계약을 맺고 공급을 받는다. 기존 참기름병은 주둥이에서 기름이 흘러 주방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방유당은 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병의 입구에 '지끈'을 둘러 처리했다. 보관함은 오래된 소금 보관 방식을 연구해 삼나무로 만들어졌다. 기름을 병입할 때는 2,3일간 자연 정제해 깨과육과 같은 불순물과 섞이지 않도록 했다.





구글링을 통해 찾은 정보는 대략 이 정도였다. 하지만 홍보 기사로 쓰여진 기사들의 내용은 대동 소이했다. 나는 이 새로운 스타일의 기름집이 가진 핵심 메시지를 고민했다. '로스터리 전문점'은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카페와 기름집을 같은 카테고리로 이해할 것 같지 않았다. 기름집은 모름지기 기름집다워야 한다. 나는 이 기사들이 방유당의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건 오래된 스타일의 기름집이 가진 '신뢰'의 프로세스 때문이 아닐까? 다음의 인터뷰 내용에서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방유당의 특장점은 바로 소비자가 가진 기름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에 있었다.


"방앗간은 원래 기름 짜는 걸 손님이 지켜보는 구조에요. 손님이 자기를 의심해서 지켜본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 거에요. 저희 부모님은 깨를 맡겨놓고 다른 볼 일 보고 오겠다고 하는 손님이 있어도 억지로 붙들어 지켜보도록 하세요. 괜한 말 나오는 게 싫으신거죠."





실제로 깨를 바꿔치기 한다거나, 기름을 손님에게 다 주지 않고 남기는 꼼수를 부리는 나쁜 방앗간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방유당은 고객들에게 깻묵을 공짜로 나눠준다. 깻묵을 손님에게 준다는 것은 남김 없이 기름을 다 짰다는 '신뢰'의 상징이 된다. 간혹 깻묵을 이용해 기름을 짜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의미도 있다. 깻묵은 음식의 조리 과정에 사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텃밭의 퇴비로 쓰이기도 한다. 문득 포장에 깻묵을 동봉한 '정준호참기름'이 떠오른 건 바로 그 때였다. 정준호참기름은 이와 같은 방식의 '양심 참기름'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다. 최근에는 올리브유를 대체하는 한국적인 오일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특급호텔, 미슐랭가이드 맛집, 유명 백화점 등에 공급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방유당의 핵심 가치는 한마디로 '신뢰'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로 기계의 디자인을 바꾸고 인테리어를 바꾸고 병의 모양을 바꾸었다. 방유당은 '기름'을 팔지 않았다. 고객들에게 '신뢰'를 팔고 있었다. 대부분의 브랜딩 작업은 이렇듯 자신의 업에 대한 재해석과 '자기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기름을 파는 곳은 많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신뢰'를 팔 수 있는 기름 가게는 많지 않다. 그러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불안을 해소하는 순간 방유당은 단순한 가게가 아닌 '브랜드'가 된다. 하지만 이런 브랜딩은 단순히 하나의 가게를 성공시키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그 '업'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도 한다. 자신의 업을  대단치 않게 여기고, 심지어는 부끄럽게 생각하는 '스몰 브랜드'들이 적지 않다. 방유당의 새로운 대표가 이 업에 뛰어든 이유도 그와 같은 사회의 편견을 이겨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참기름은 우리가 생활 가운데 매일 접하는 것인 데도 정작 그걸 만들어내는 기름집은 낮게 보는 사회적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시선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과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부모님의 음식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방유당이에요."






오래된 기름집처럼, 늘 해오던 방식에 만족하다가 역사 속으로 쓸쓸히 사라지는 브랜드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브랜드'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위압감으로 '우리 같은 작은 가게가 어떻게...' 라며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 경우를 참으로 많이 보았다. 하지만 브랜드란 돈 있는 회사들이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포장 바꾸기가 아니다. 그 업이 지닌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보이고, 그 결과로 그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생존과 성장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꼭 대단한 비용을 치러야만 해낼 수 있는 거창한 작업만은 아니다. 가치를 더하는 방법은 포장에 깻묵을 더하는 아주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방유당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병과 기계의 디자인을 바꾸고, 판매하는 공간의 컨셉을 바꾸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이 이 브랜드의 핵심인 '신뢰'라는 가치를 더하는데 있다. 내가 방유당이라는 가게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브랜딩'의 필요성을 더 많은 작은 가게들이 깨달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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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 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개인 및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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