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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의 작은 브랜드, 작지 않은 스토리·1,315·2019. 10. 28

공존을 위한 데이터 경영, 한정식집 마실 이야기

"한정식 집 '마실'을 가는데요."


천안역에서 내린 후 곧바로 택시를 탔다. 그리고 지인의 말 대로 목적지를 이야기했다. 이름만 대면 알거라는 확신에 찬 설명을 듣고도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택시 기사는 두 말 없이 차를 몰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식당에 대한 칭찬, 혹은 약간은 경외가 섞인 말들. 나는 흡사 광고를 듣는 기분으로 식당 앞에 내렸다. 혹시나 해서 지도를 살펴보았다. 천안시에서도 남서쪽 끝에 위치한 입지, 식당을 둘러싼 숲은 이곳이 얼마나 외딴 곳인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천안 사람들은 다 안다는 한정식집 '마실', 나무로 지어진 고즈넉한 이 작은 식당이 왜 그토록 사랑을 받고 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나는 초가을의 상쾌한 공기를 가로지르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이 식당의 주인, 박노진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퓨전 한정식을 좋아하는 30대 고객들은 일주일마다 이곳을 찾았어요. 하지만 일반적인 백반 한정식을 좋아하는 4,50대 고객들은 두 세달 후에야 다시 식당을 찾더군요. 자연스럽게 단 맛에 익숙한 젊은 주부들의 입맛에 맞추기 시작했어요. 그 분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9,900원 짜리 정식 코스를 그 때 처음으로 시작했어요. 우리 타겟은 명확했으니까요."


지금도 이 한정식집의 메뉴는 3만 원을 넘는 코스 요리가 거의 없다. 2만 원 전후의 메뉴 가격 역시 젊은 주부들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렇듯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박 대표의 말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다고 성공한 사장님들에게서 흔히 느껴지는 우락부락한 카리스마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동네 어디서라도 만날 것 같은 친근한 인상, 그러나 조곤조곤한 말 속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고집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정식집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목조 건물은 지금까지 벌써 세 번이나 불이 났었다. 그래도 한사코 나무를 고집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가마니 틀로 장식한 인테리어는 50대 이후의 고객들에게는 향수를, 함께 온 자녀들에게는 유니크한 개성으로 다가온다. 건물 자체가 손님들에겐 마실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요 앞 큰 길가로 식당을 옮길까도 생각해보았어요. 그런데 고객과 주변 지인들이 결사코 반대하는 거에요. 산 밑의 아늑한 지금의 위치가 '마실답다'는 거에요. 무려 한달을 쉬어가며 13억을 투자해 지금의 식당으로 다시 만들어졌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첫 날부터 손님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더군요. 그들에게 이 식당이 식당 그 이상의 곳임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죠."





맛, 제대로 된 '한정식'을 만드는 첫 번째 조건


그렇다고 마실이 분위기만으로 지금의 명성을 얻었을리는 만무했다. 한 가지 이유를 말해달라고 하니 박 대표는 서슴없이 '맛'을 꼽았다. 그 자신이 열심히 사전을 찾아보았지만 한정식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우리나라의 제철 식재료로 음식 본연의 맛을 내는 것, 이렇게 자신만의 한정식을 정의내릴 수 있었다. 최대한 향신료를 자제하고 자연을 표현할 수 있는 음식이 그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떡갈비만 해도 그랬다. 그는 제대로 된 떡갈비를 만들기 위해 동두천에서 목포에 이르기까지 안 가본 식당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 식당은 대부분 고기를 갈아낸 후 반죽처럼 치대서 조리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 후로 마실은 냉장육을 채를 썰어 떡갈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기 특유의 씹히는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보쌈은 수입육을 쓰지만 삶는 소스 만큼은 십전대보탕의 약재를 써서 만들어낸다. 잡내도 잡으면서 한약이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조미료를 절대 쓰지 않는다. 재료 본연의 맛을 해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MSG 때문에 두 명의 주방장과 결별한 경험이 있습니다. 구매 목록에는 있는데 조리실에는 없더군요. 이 잡듯이 식당을 뒤져서 결국 찾아냈죠. 국이나 찌개에 들어가는 된장에는 특유의 쓴맛이 있어요. 주방장들이 MSG를 고집하는 이유는 이 끝맛을 잡아주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가 없더군요. 그건 제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한식이 아니니까요."


그에게는 '우리처럼 한식을 잘 풀어내는 곳은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제대로 된 한식을 연구하기 위해 1년 이상 두 명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았다. 직원들을 보내 전국 40여 곳의 내노라 하는 한정식집을 벤치마킹하는 데만 2억을 투자했다. 음식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한 세트에 100만원을 호가하는 언더레인지를 테이블마다 설치했다. 식당 옆에 위치한 사무실 3층에는 조리 연구실이 별도로 존재한다. 주방장과 영양사는 이곳에서 세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세트 메뉴를 하루 종일 연구한다. 아마도 이런 식당에서 별도의 메뉴 개발을 위해 사람을 고용한 곳은 없을 거라 했다. 은근슬쩍 직원들의 근속 연수를 물었다. 유별나게 친절한 점장과 직원의 응대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점장님만 12년 째 근무 중이세요. 제대로 된 응대를 위해 특별히 스카웃한 분이시죠. 다른 종업원도 평균 근속 연수가 모두 6,7년 이상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아픈 사연이 있어요.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대부분은 남편을 사별했거나 이혼했거나 사업에 실패한 분들이 많으세요. 손님이 많고 메뉴가 다양하니 순간 노동 강도는 높은 편이죠. 그래서 인근 식당보다 급여를 4,50만 원 이상 높게 드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자란 수입을 메우느라 지금의 일에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저도 그 분들 때문에 돈을 벌고 있잖아요. 사람 사는 세상이 우선 아닌가요?"



'마실'의 아우라를 만드는 인재 경영의 비밀


나는 이런 결정의 배후에 있을 박 대표만의 사연이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역시 2,500평이나 하는 고깃집을 크게 벌였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계약 기간 때문에 그만 둘 수도 없는 식당 운영이 7,8개월 이상 이어졌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도 새벽 4,5시면 장을 보기 위해 시장에 나가야 했다. 11시 까지 청소를 마치고 들어가면 또 다시 지옥같은 새로운 날이 밝아오곤 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일하는 하루 하루였다. 어차피 일하는 거라면 즐겁게 일하고 싶었다. 때마침 구본형 선생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공부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오랫동안 응어리진 가슴 한 편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자신보다 잘 난 사람들을 데려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식당을 하면서 무슨 인재 경영이냐는 핀잔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님을 전문적으로 접객하는 점장과, 영양사, 카운터까지 새롭게 고용했다. 다른 일을 하던 사모님까지 불러 자신의 빈 틈을 메웠다.


"사장의 일은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을 적재 적소에 배치하는 거에요. 그러자 남는 시간에 비로소 제가 잘 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죠. 매일매일의 매출은 물론 재고 조사에 이르까지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었죠. 식당 경영의 모든 노하우를 숫자로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식당이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안갯속 같은 이 식당 성공의 비밀에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점장이가 '펜대를 잡고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할만큼 박 노진 대표는 식당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 수 있었다. 새벽 장을 보고 온갖 손님을 다 응대하고 밤 늦게까지 뒷정리를 해야 하는 모든 식당일이 그에게는 고역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그런 인고의 시간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일을 더 잘 하는 사람에게 위임하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가 잘하는 데이터 경영에 집중하면서부터 식당 일은 그에게 '맞는' 일로 변모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한식을 고민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일반 식당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식당 운영을 위한 매출과 재고 등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하면서 원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어요. 저희 식당은 원가율 40%, 시급 12,000원 까지는 견딜 수 있는 체력이 있어요. 무조건적인 자본 투자가 아닌 체계적인 데이터 경영이 저희 식당의 핵심 경쟁력이에요. 그게 바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구요."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한 선택, 데이터 경영


우리나라만큼 자영업자들이 많은 곳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 채 1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골목상권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살벌한 전쟁터다. 그곳에서 감히 성공을 말할 수 있는 식당은 1%를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실은 왜 16년 이상 영속하며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가 강조하는 데이터 경영은 신선한 발상이었다. 그의 성공 방식은 이미 주변에 알려져 또 다른 많은 식당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뒤에 숨은 그의 '공존'의 철학을 보았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일은 철저히 주변 사람들에게 위임했다.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고 전문가를 모셔왔다. 그 대신 그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난 12년 간 '해피데이'라는 나눔 활동을 쉬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식사 금액의 일부를 기부하는 일종의 일일 식당 행사였다. 세월호, 천안 농민회 같은 사회 활동가들을 돕기 위한 이 행사는 무려 98회를 이어오고 있다.



마실은 단순한 한정식집이 아니다. 공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식당이다. 밝게 일하는 종업원의 친절한 응대는 단순히 높은 월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높은 평균 근속연수는 이 식당의 숨은 자산이다. 지역사회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모두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박 대표만의 간절한 염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그 답을 가장 '자기다운' 데이터 경영에서 찾았다. 식당 운영의 모든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고 숫자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그는 자신처럼 식당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6년 간 대략 5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3년을 기다리지 못하더군요. 모든 업에는 그 일이 숙성될 만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그 기간이 3년이었어요.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왔죠.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고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식당이 유명해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런 식당은 오래 갈 수도 없구요. 마실은 그 시간을 견뎌왔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마실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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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 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개인 및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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