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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의 작은 브랜드, 작지 않은 스토리·1,795·2019. 10. 10

이제, 작은 것들의 시대 (2)

'비브람'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아웃솔, 그러니까 신발 밑창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브랜드다. 1937년, 창업자 비탈레 브라마니는 특유의 패턴을 가진 아웃솔을 특허 출원한다. 처음에는 주로 등산화를 위한 고무 아웃솔을 제작했다. 이후 2차 세계 대전때 군화용 아웃솔을 제작하며 두각을 나타내더니, 이후 등산화나 부츠를 상징하는 기본적인 패턴으로 자리잡게 된다.


비브람은 내구성이나 기능성에서 손꼽히는 아웃솔 브랜드다. 부츠, 그 중에서도 작업화나 등산화의 아웃솔로 가장 높게 평가되는 브랜드다. 70년대 이후에는 미국의 아웃도어 붐에 편승해 합성고무를 사용한 신발 밑창 제조사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나이키나 뉴발란스,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도 고급화 전략이 필요한 라인이나 내구성이 필요한 등산화, 트래킹화 라인에는 비브람의 아웃솔을 사용한다. 2010년대 이후에는 자체척으로 독특한 신발들을 제작하고 있다. 발가락이 보이는 신발, 'Five Fingers'가 그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부산에 자리잡은 40년 된 신발 밑창 부품회사인 '대야고무' 대표로부터 듣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은 신발 관련 회사의 담당자들이 모두 인정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들 역시 고무와 합성 소재로 신발 밑창만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유일의, 합성소재인 스폰지로 신발 밑창을 제작하는 회사로 남아 있다.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아 아들이 회사를 운영한다. 직원은 예닐곱 명 정도, 동대문과 같은 비브랜드 제품의 신발 밑창을 주로 공급한다.


나는 네 번에 걸쳐 무려 10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다. 공장의 곳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소재와 완제품을 만져보았다. 직접 만난 창업자와 현 대표의 제품에 대한 자부심은 40년 내공만큼이나 대단했다. 하지만 이들은 왜 '비브람' 같은 브랜드가 되지 못한 것일까? 왜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이름없는 회사로 남은 것일까?



나는 문득 한 장에 만 원 이상을 받지 못하는 파전 생각이 떠올랐다. 원료로 보자면 다를 것 없는 피자는 몇 만원 이상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못할 것이 무엇인가 싶지만, 현실은 파전과 피자 만큼이나 큰 간극이 있다. 왜 우리는 '신발 밑창'을 만들고 그들은 '비브람'이라는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것일까? 국내에서 고급 구두의 신발 밑창 원가는 1,2만원을넘지 못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비브람으로 교체하려면 10만 원을 호가한다. 나는 이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구찌나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를 볼 때는 이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발 밑창 조차도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현실은, 이상하게 그 차이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손재주 하나 만큼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리다. 그런에 왜 우리는 '비브람' 같은 브랜드를 만들지 못할까? 왜 여전히 몇 천원 짜리 신발 밑창을 만드는 이름없는 회사로 남아야만 할까. 40년 간 이어온 전통과 노하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왜 받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대야고무'의 현 대표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짧은 머리의 40대 사장님은 부산 남자 특유의 걸걸한 사투리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단 시장의 크기가 작아예. 에스콰이어나 엘칸토 같은 브랜드가 무너진 이후에 주로 동대문 같은 시장 브랜드에 납품을 합니다. 이래서는 우리도 살아남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니 마케팅 능력이 딸릴 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예술적 센스도 떨어지고예. 해외에 내다 팔고 싶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걸 우짭니까.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어요. 소비자들이 알아주지 않거든요. 가성비만 중시해서 구매를 하니까 우리도 자연히 그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거라예."


나는 이 대목에서 이 문제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브랜드가 없는 이유는 제조사의 의지 부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비브람에 열광하면서도 국내 신발 브랜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소비자들이 만든 문화가 이 업의 전반적인 가치를 결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40년 된 장인의 손길이 만들어낸 제품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브랜드란 무엇일까? 어쩌면 이미 유명해진 몇몇 브랜드를 이유없이 추종하는 또 하나의 사대주의에 물든 결과는 아닐까? 브랜드의 가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제조사와 소비자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문화가 비로소 좋은 제품을 넘어 명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대야고무'와 '비브람'의 차이는 그 가격 만큼이나 엄청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브랜드'의 가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쩌면 그 가격 이상으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마치 파전과 피자처럼, 신발 밑창과 비브람처럼 섣불리 넘기 힘든 간극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를 맺을 순 없었다. 왜 우리에게 브랜드가 필요할까. 왜 우리는 브랜드를 만들어내야만 할까. 나는 일단 아래의 두 가지를 대표에게 이야기했다.




첫째,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서이다. 어떤 회사의 대표도 1,2년 만 회사를 하다 말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하진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사기꾼이다. 그렇다면 수십 년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때 필요해지는 것이 바로 '브랜드'이다. 가격만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순 없다. 어느 때보다도 상향평준화된 제품과 서비스들이 시장에 즐비한 지금이다. 어떤 산업군에서도 제품의 질과 성능으로 압도적인 시장의 우위를 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브랜드는 다르다. 같은 소재, 같은 형태로 만들어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몇 천원짜리 은반지가 '티파니'가 되는 순간 몇 백 배의 가치로 팔려나간다. 버려진 트럭의 방수천이 '프라이탁'이 되는 되는 순간 수십 만원 짜리 유일한 나만의 가방이 된다. '대야고무'가 앞으로의 40년을 이어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이다. 바로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둘째,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서다. 부산의 이 조그만 회사의 창업자에겐, 그리고 현재의 대표에게는, 자신의 제품에 대한 엄청난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비브람과 같은 유명한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자 씨앗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 자부심이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제조업자들 사이의 알음알음 인지도만 가지고는 시장의 재평가를 받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게다가 합성 소재에 고무가 들어간 스폰지 소재로 신발 밑창을 만드는 회사는 '대야고무'가 유일하다. 브랜드가 가진 가장 큰 속성 중 하나가 희소성이다. 그것이  결국 브랜드의 진짜 가치를 결정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대야고무는 신발 밑창에 브랜드를 새길 수 없을까? 왜 주문 생산에만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브랜드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부심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앞으로도 40년을 이어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자부심'이다. 국내 유일의, 세계 최고의 신발 밑창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하지만 자부심은 혼자만의 자신감으로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시장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을 얻어야만 한다.




다행히 시장이 변하고 있다. 개성 넘치는 동네 빵집과 독립 서점이 소비자들의 점점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신발 밑창이라고 불가능할 리 없다. '대야고무'의 창업자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었다. 아들은 회사를 이어 받았다. 딸은 미국와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후 '구찌'에서 일했다. 이제 이들이 의기 투합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 제품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에 더해 전문적인 마케터의 손길이 더해지는 중이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비브람'에 대적할만한 아주 작은 브랜드 하나의 탄생이 불가능할 것도 없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일에 평생을 건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는 댓가가 주어져야만 한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도 돌아온다. 제대로 된 제품에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가. 그것이 부산의 아주 작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신발 밑창과 같은 대단치 않은 것일지라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브랜드'일 것이라 믿는다. '작은 것들의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라 확신한다.

박요철 브랜드 브랜딩 신발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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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 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개인 및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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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te: www.beaver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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