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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의 작은 브랜드, 작지 않은 스토리·794·2019. 09. 27

이제, 작은 것들의 시대

40년 된 회사가 있다. 신발, 그 중에서도 주로 구두의 굽과 밑창을 만든다. 한때 금강이나 에스콰이어 같은 브랜드에 납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동대문과 같은 시장 브랜드에 납품을 한다. 재료는 주로 스펀지다. EVA라고 불리는 소재에 고무를 배합해 만든다. 고무보다 경도는 약하지만 가볍고 저렴하고 가공하기 쉽다. 이 소재로 신발 부품을 생산하는 곳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아들은 업을 물려받았다. 딸은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오랫동안 구찌에서 일했다. 두 남매는 아버지가 남긴 이 작지만 소중한 회사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게 일을 의뢰해왔다. 그래서 나는 매주 이들을 만난다. 인터뷰는 언제나 세 시간을 훌쩍 넘긴다.


어제는 이 모든 작업이 진행되는 공장을 견학했다. 인터뷰로만 듣던 모든 내용들이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유산이다. 40년이란 세월을 견뎌낸 이 회사의 숨은 힘을 슬쩍 훔쳐본 느낌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과 딸은 정말로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이런 작업을 의뢰할 이유가 없다. 나 역시 마음을 다잡고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작지만 강한 기업들을 히든 챔피언이라고 부른다. 주로 독일과 일본에 이런 기업이 많다. 이들의 목적은 무분별한 성장이 아니다. 견고한 생존이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성장을 제한하기도 한다. 함부로 확장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도 자제한다.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역행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기업은 로켓이다. 하천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이다.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솟구치지 않으면, 쉴 새 없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그 결과는 현상 유지가 아니다. 추락이고 낙오이다. 그것이 자본주의 산업의 당연한 생리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결과는 브랜드의 탄생이다. 수백 년 동안 젓가락 하나만 만든다. 부채만 만든다. 기술과 장인을 존중하는 문화는 이런 히든 챔피언을 낳았다. 독일과 일본에 이런 기업들이 많은 이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작은 기업의 생존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3차에 걸친 석유 파동으로 인해 70명에 이르던 직원이 서너 명으로 줄기도 했다. IMF를 전후해서는 값싼 중국산 신발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나의 질문은 일관되고도 단순했다. 무엇이 이 작은 기업을 40년이나 영속하게 만들었을까. 결코 좋지 않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 회사는 2대에서 걸쳐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굳이 비용을 들여 이러한 과정들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숨은 뜻은 무엇일까.


하지만 2주에 걸친 인터뷰가 지속되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품질 관리는 기본이었다. 동업자, 직원, 이해 관계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에서는 감탄이 흘러 나왔다.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창업자는 인터뷰 당일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프리미어를 배우고 있었다. 함께 식사한 식당의 사장님과는 몇년 째 같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데일 카네기, 브라이언 트레이시, 스티븐 코비 등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눈빛이 반짝였다. 이 모든 것이 40년 장수하는 작은 기업의 기본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의 이야기다. 창업자의 아들과 인터뷰 시간이었다.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왜 어려운 줄 알면서 굳이 이 일을 가업으로 물려받았는지.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전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재미있으니까요."



지금의 대표는 20년 째 이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이 일에 뛰어들었다. 지금도 한 눈 팔지 않고 이 일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사무실 한 켠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컬러풀한 소재의 신발 밑창들이 하나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생산 공정을 멈추고 반대를 무릅쓰고 고집스럽게 만든 시제품들이 즐비했다. 마치 아이스크림 매장을 떠올리게 하는 형형색색의 신발들이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직감했다. 아들은 일의 기쁨, 보람, 만족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무턱대고 경쟁사를 방문해 최고의 배합을 찾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모든 과정을 아들은 지켜보고 있었다. 명절이면 친척들의 모든 기차표를 예매해놓은 배려를 온 몸으로 습득하고 있었다. 돈만 바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유일한 회사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유일함이 다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선순환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의 부품인데도 다른 회사들이 찾는 이유는 비단 제품의 품질만은 아닐 것이다. 맡은 일을 즐거워하는 애티튜드, 반 발 앞서 트렌드의 변화를 읽어내는 혜안, 끊임없이 나아지고 변화하려는 본능이 이들 2대에서 걸친 작은 회사가 지금까지 생존해온 가장 큰 이유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최고'만을 추구해왔다. 가장 빠른 무엇이 되고자 했고, 가장 큰 무엇이 되는데 모든 것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 결과 다양성을 잃었다. 모 아니면 도의 삶은 뜻하지 않게 수많은 루저들을 낳았다. 1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냉혹한 시절을 오랫동안 겪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가 등장했다. 우리 나라 유튜버 중 가장 먼저 천 만 구독자를 돌파한 J.Fla는 두 번의 앨범을 낸 기성 가수였다. 하지만 그 앨범이 시장의 사랑을 받지 못하자 타인의 노래를 부른 커버 송의 가수로 스스로를 재해석했다. 그 결과는 부와 명예였다. 하지만 이런 '작은 것들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남다른 것, 독특한 것, 나만의 것을 소비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등장한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작은 기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크고 화려한 것들이 아닌, 작고 소박한 것들의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서 지속가능한 생존의 힘을 배울 차례다. 불황은 시작되었고 불같은 성장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작은 것들의 시대다. 그들에게 배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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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 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개인 및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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