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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조 원 자산가 서정진회장의 셀트리온 창업이야기

2020.07.23 06:51

창업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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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의 창업주 서정진 회장의 자산은 13조 원 규모로 이건희 회장에 이은 우리나라 부자순위 2위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2000년 5000만 원으로 셀트리온 홀딩스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한 서정진 회장은 이후 셀트리온을 설립하고 2020년 현재 시가총액 42조 원이 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IMF 위기로 인해 실직하게된 45세 샐러리맨이 어떻게 20년만에 거대 기업을 일구고 우리나라 2번 째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의 창업 이야기를 통해 그 비법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금수저 or 흙수저?

서정진 회장은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 자산가라고 하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조그만 연탄가게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학교때 학교 수업후 집에 오면 온 가족이 연탄지게를 들고 산비탈이 많은 동네에 연탄 배달을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대학교 다닐때에는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했는데요. 당시 정부의 규제로 과외가 금지됐던 터라 택시기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24시간 택시 운전을 하며 돈을 벌고 다음날은 하루종일 수업을 듣는 방식으로 학업을 병행 했다고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대학생활을 했지만 절실했던만큼 최선을 다했고 하는데요. 4.3 만점에 4.18의 우수한 성적, 그것도 최초로 조기졸업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서정진 회장은 성공비결을 묻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의지와 성실함을 중요하게 꼽는데요. 관점에 따라 역경은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기회가 되어 더 큰 역량을 쌓는데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2. 직장생활

1983년 서정진 회장은 삼성전기에 입사하게 되는데요. 그의 성실함은 직장생활에도 이어졌고 1985년 당시 삼성전기에서 함께 일하던 임원의 눈에 들어 그가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할 때 함께 이동하게 됩니다. 한국생산성본부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컨설팅을 해주는 조직입니다.


서정진 회장은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대우차 컨설팅 회의에 참석했다가 김우중 회장을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요. 대우차는 당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신차 개발비로 인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서정진 회장은 당시 체제가 붕괴되고 있었던 러시아와 동유럽권의 저렴한 생산시설을 활용해 생산량을 10배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는데요. 기존 방식에서만 해법을 제시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획기적이었던 서정진 회장의 발언은 김우중 회장의 마음을 사게 됩니다.


김우중 회장은 34세에 불과한 서정진 회장에게 대우그룹으로 입사를 제안했고, 서정진회장은 사장급 대우를 해주는 조건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가볍게 받아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정진 회장은 1991년 대우차의 임원으로 스카우트 됩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우그룹이 해체되게 되는데요. 서정진 회장은 전략실 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1999년 퇴직금도 마다하고 회사를 나옵니다.



3. 창업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된 서정진 회장은 매일같이 장모에게 걱정섞인 핀잔을 듣게 됩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서정진 회장은 2000년 5천만 원의 자금으로 대우차에서 함께 근무했던 5명의 직원들과 함께 셀트리온 홀딩스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하게 됩니다.


넥솔은 처음에 사업 아이템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사람들만 있었던 거죠. 그래도 나름 모양을 갖춘 회사이니 아침에 모두 출근해서 매일같이 회의를 했다고 하는데요. 오전에는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열띤 토론을 하고 오후에는 저녁을 먹고 집에갈지 말지를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서정진 회장은 2000년 당시 재취업이 되었다면 창업하지 않았을거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는데요. 본인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내가 할 수 있으면 누구나 창업에 성공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4. 사업 아이템

사업 아이템도 없이 창업한 서정진 회장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첨단산업이 몰려있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고, 당시 세계 1위 바이오기업이었던 “제넨텍” 건물을 보게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리서치를 통해 앞으로는 바이오가 괜찮을거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후 싸구려 호텔방에서 약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는데요. 더는 신물질이 나오기 어려운 제약산업 특성상 400여가지 물질만 공부하면 됐었기에 어려울게 없었다고 합니다. 약의 특성, 효능, 부작용, 임상자료 등 한 물질당 반나절 정도 공부하면 더 이상 할게 없었다죠?


이렇게 6개월을 공부하고 노벨 의학상을 받은 스텐포드대학 의사들과 밥먹으면서 약 얘기를 하게 됐는데 서정진 회장은 이들에게 약을 전공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의학지식은 사람의 장기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가 느린 특성이 있는데요. 때문에 바이오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공부해야할 내용이 많지 않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이오 산업에 대한 전망을 확신한 서정진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사업제안을 했다고 하는데요. 회사들을 대상으로 바이오 사업아이템을 컨설팅 해주는 일을 해보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망한 대우그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선뜻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적임자를 만나지 못했고, 직접 투자자를 유치해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5. 데스밸리

현재 세계로 뻗어가는 셀트리온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초기 사업은 순탄치 않았는데요. 제품을 개발하고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판매가 가능한 제약산업 특성상 처음 7년 간은 매출없이 투자와 부채로 사업을 연명했다고 합니다.


개발에 장기간 투자만 지속해야 하는 점은 이미 계획에 포함된 내용이었지만, 그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져 더 많은 부채를 쓰게됐고 투자자들로부터 불신을 사게 됐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난항에 사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자살하러 강가로 운전해서 가는 도중 마주오던 트럭과 사고가 날뻔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일단 그날은 죽기에 안 좋은듯 해서 다음을 기약했다고 합니다.


서정진 회장은 창업후 7년 동안이나 극도로 어려운 환경에 있었지만, 자신을 믿고 투자하고 일해준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서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창업가로서 특별한 소명의식이 있었다기 보다는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그는 이야기합니다.



6. 셀트리온의 도약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말이 있죠? 긴 데스벨리를 버텨낸 셀트리온은 2009년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서게 되고, 2012년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개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셀트리온의 램시마는 미국과 유럽에서 대박을 치게 되고요. 현재 세계 70여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에따라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42조 원으로 껑충 뛰어 올라 우리나라 주식시장 5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셀트리온의 램시마는 최근 코로나 19 치료효과의 사례도 나오고 있어 유럽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요. 국내 대표 바이오 기업으로서 진단키트, 치료제, 백신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7. 흙수저의 성공

서정진 회장이 제일 싫어하는 말은 금수저니 흙수저니하는 수저타령이라고 하는데요. 부모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평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열정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에게 서정진 회장은 도전을 해야 열정이 생길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의미없는 핑계일 뿐이죠.


서정진 회장은 도전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실패하면 다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시작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실패라는 단어는 지우고 도전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패배감에 젖어있는 청년세대를 향해 우리나라 청년들은 과거 세대보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며 눈 뭉치를 만들것을 조언합니다. 잘 만들어진 눈 뭉치를 굴리면 미래에 적당한 때에 눈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창업에 실패하고 안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눈뭉치가 아니라 눈사람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상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의 창업이야기를 살펴보았는데요. “가장 좋은 수면제는 졸릴 때까지 일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명언처럼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창업가의 본보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고요. 다음에 더 유익한 내용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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