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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의 작은 브랜드, 작지 않은 스토리·495·2019. 09. 09

잊혀진 시장의 개척자, 어바우더스

우리 동네 파리바게뜨가 이번 달 문을 닫는다. 아주 가끔씩 찾던 곳이라 특별한 아쉬움은 없었다. 다만 얼마 전 들었던 뉴스 하나가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 지역에만 독립 서점이 500여 군데에 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동네 빵집은 또 얼마나 늘었을까? 뉴스에 소개된 맛집 중 빵집이  적지 않았다. 변화는 이 뿐 아니다. 전국의 예식장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결혼하지 않는다. 심지어 혼수라는 문화까지 사라졌다. 결혼을 해도 쓰던 가재도구를 챙겨와 살림을 합칠 뿐이다. 관련된 산업들에 영향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혼밥, 혼술족에 관한 이야기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 대단한 촉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변화다. 개성과 취향이 더 없이 중요한 시대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거대한 물결이다. 트레바리와 같은 취미에 기반한 살롱 문화의 부흥은 이와 같은 변화의 수혜를 입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던지는 한 가지 질문, 우리나라엔 과연 얼마나 많은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을까? 1500명 제한의 단톡방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동호회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하루는 트롯트 가수의 팬카페에서 연락이 왔어요. 단체복을 맞추고 싶다구요.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동호회였죠."




금요일 오후, 뚝섬역 인근 패스트파이브에서 검은 셔츠를 입은 두 사람의 훈남을 만났다. 이들은 사업을 한다. 멋지고 세련된 IT 스타트업이 드물지 않은 시대에 제조업을 하는 이들이다. 사업 아이템은 단체복. 이름만 들어도 올드한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이들은 이 올드한 사업에 뛰어들어 창업 1년 만에 10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작년 대비 두 배 성장이다. 아직까진 한 푼의 투자도 받지 않았다. 그 첫 시작은 대학생을 상대로 한 '과잠' 시장이었다. 대학교의 학과나 동호회를 직접 찾아가 단체복 주문을 받았다. 자본이 없으니 발품을 팔아야 했다. 스스로를 프로 발품러라 이름 붙였다. 로우로우, 맨솔, 삼분의일 등의 스타트업을 벤치마킹해  스토리를 만들었다. 왜 자신들이 만든 단체복이 더 좋은 선택인지를 직접 발로 뛰어가며 웅변하는 시간들이었다. 주문 후 3,4주가 걸리는 단체복은 의외로 고관여 제품이다. 다양한 구성원의 니즈를 정확한 납기에 맞추어 출고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시장은 그동안 외면받던 시장이었다. 봉제공장을 찾아가 단가에 맞춰 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20대의 두 창업 멤버가 누구보다도 깔끔한 모습으로 찾아가 제안서를 보여주고 PT를 했다. 소비자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들 회사의 이름은 '어바우더스(about us)'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단체복을 생산하고 납품하는 꼼꼼한 과정을 잘 할 수 있어서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돈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폼나는 창업보다는 잘하는 일에 승부를 걸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이 없으니 발품을 팔아야 했죠.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구요."


모두가 떠나는 시장, 아무도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산업이었다. 마치 버려진 집들이 즐비한 시골 마을로 귀농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히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시장이라는 사실을. 단체복이 고관여 제품인 이유가 있다. '과잠(학과의 점퍼)'은 상징이다. 그 학과의 아이덴티티다. 자랑스러운 자기 표현의 도구다. 개성과 취향의 시대의 개인들은 이러한 자기 표현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노트북 앞면조차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스티커로 가득 채우는 시대다. 타투는 하지 못해도 해나는 하고 싶은 그 숨은 욕구는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자본의 부족으로, 숨은 시장에 어렵사리 뛰어든 이들이 발을 디딘 곳에서 뜻 밖의 가능성을 보았다. 가파른 성장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최근 공장을 인수했다. 역시나 사업의 확장인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뜻 밖의 답이 나왔다. 어바우더스의 창업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공장을 인수한 건 사업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더 큰 신뢰를 얻기 위한 도전이었어요. 단체복 시장은 의외로 고관여 시장입니다. 원단이나 프린팅 등에 신경 쓰지 않으면 곧바로 클레임이 들어오기 때문이죠. 저마다의 개성과 취향이 모두 다른 학과나 동호회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무실과 공장을 가까운 곳에 두기 위한 투자였던 거죠."


그 결과 어바우더스는 꼼꼼한 검수를 통해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고객들이 찾아오는 경우엔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공장에 꼭 데려가곤 했다. 따로 모델을 쓰는 대신 공장의 작업 현장을 영상으로 찍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으로 하는 10만원 짜리 광고에는 이런 스토리를 담았다. 자신들만의 개성 넘치는 단체복을 맞추고 싶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세밀하게 반응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노력은 고스란히 매출의 증가로 이어졌다. 단가를 낮추고 사업의 규모를 늘릴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이번에도 달랐다. 제품의 단가를 낮추기보다 제품의 고급화에 더욱 더 큰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입에선 뜻밖에 '장인정신'이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단추를 숨기는 히든 스냅이란 용어를 말할 때는 되물어야만 했다. 만일 내가 고객의 입장이라면 이들의 화려하지 않은 언변과 기술에 대한 집요함에 마음이 갔을 법 싶었다. 정장 차림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옷에 맞춘 검은 테의 안경까지. 누가 봐도 공장에 외주를 줄 법한 장사꾼?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20대의 젊음이 주는 훈훈함까지. 단체복 시장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봉제 시장은 몰락한지 오래 되었어요. 단체복과 같은 제품들은 모두 베트남의 공장에서 외주로 생산되고 있죠. 하지만 단체복은 납기가 생명이에요. 해외에 있는 공장에서는 3,4주의 소량 주문에 대한 납기를 결코 맞출 수 없어요.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과연 5년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성장 가도를 달릴 수 있을까? 이 산업의 정황을 모르는 나로써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응원하고 싶었다. 버려진 황무지를 일구는 농부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장을 입은 세련된 농부들이다. 고부가가치의 트렌디한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들이다. 내가 보기에 이들의 시장은 무한대로 확장 가능할 것 같았다. '자기 표현'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트롯트 가수의 팬클럽이 성황을 이루는 시대다. 강남역의 어느 카페는 아이돌 그룹의 팬카페가  진행하는 팬사인회와 전시회로 매출의 대부분을 올리고 있다고 들었다. 독서 모임은 헤아릴 수도 없다. 지인 한 사람은 살사춤에 빠져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 역시  수백 명의 멤버들이 함께 하는 스몰 스텝이라는 단톡방을 1년 이상 운영해오고 있다. 단체복에 대한 필요는 일찍부터 있었다. 나를 표현하고 내가 속한 단체와 동호회를 자랑스럽게 알리고 싶은 사람들. 이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 생생한 증거의 모습들이다. 그러니 주목해야 한다. 화려한 욕심을 버리고 시장의 황무지에 뛰어든 이들의 선택을. 아참 그러고보니 이들이 만든 브랜드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어요. 어느 회사나 단체의 홈페이지를 가도 'about us'란 메뉴가 있지 않나요? 자신들을 알리고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딱인 네이밍이다 싶었습니다. 그게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가진 가치의 본질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가진 자기 표현의 욕구에 충실할 수 있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게 바로 진짜 '브랜딩'이 아닐까요?"




Written by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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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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