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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의 작은 브랜드, 작지 않은 스토리·553·2018. 12. 18

주문을 외워보자, 개기름을 지워보자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이라는 영화가 있다. 꽤 유명한 배우들이 나온 영화지만 애써 다시 찾아보진 않았다. 나는 그 영화를 다른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자인듯한 그들은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사내 자판기에서 콜라를 꺼내 마시곤 했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캔 하나가 쏟아져 나온다. 그 콜라를 집어든 사내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두 다리를 책상에 올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유분망한 편집 회의... 기자가 되고 싶어한 적은 없었으나, 나는 진심으로 그 장면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멋있게 (커피도 아니고) 콜라캔을 뜯으며 일필휘지의 원고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것도 많이 달랐다.


브랜드 전문지에서 첫 밤샘을 하던 날, 눈가의 실핏줄이 터졌다. 그때 편집장이 다가와 웃으며 속옷을 건넸다. 뭔가 통과의례같은 그 장면이 딱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글쓰기는 고역이었다. 세상에 쉬운 글은 없었다. 동료들의 피드백이 칼날처럼 쉴새없이 날아와 꽂혔다. 그들이 차가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업의 숨은 진실이 그랬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끝이 어디 있고 만족이 어디 있겠나. 간밤에 쓴 글이 아침이면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은 연애편지만은 아니다. 그걸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살 떨리는 일이다. 그렇게 7년을 훈련을 받고 나니 글쓰기가 쉬워졌냐고? 그럴리가. 지금도 개발새발 초고를 쓴다. 그것도 브런치의 글쓰기 화면에서 퇴고도 하지 않고 초고를 쓴다. 그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이 글이 절대 완성되지 않을 것임을 나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시로 다시 읽고 고친다)


신문사가 아니고 방송사였나? 그들이 확실히 콜라를 즐기긴 했다.

서설이 길었다. 하고픈 말은 한 가지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내가 잘 아는 화장품 회사의 대표가 있다. 직원 3명의 아주 조촐한 회사다. '모공 전문'을 핵심 경쟁력으로 꽤 오랜 시간 이 험지를 잘 견뎌왔다. 그런 회사가 이번에 신제품을 냈다. 이름하여 '개기름 지우개'. 너무도 직설적이고 선명해서 당황스러운 이름대로 기능 하나는 명확하다. 평소 누구 못지 않은 산유량을 자랑하는 내게는 필수품이 되었다. 번들번들하던 이마에 아주 소량의 개기름 지우개를 도포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뽀송해진다. 하지만 대놓고 쓰진 못한다. 나는 조금 더 젊은 오빠이고 싶으니까. 그래서 이름이 조금 더 세련됐으면 했다. 모양도 지금보다는 좀 더 있어보였음 했다. 일본의 그룹을 떠올리는 '스매쉬Smash'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스마트한smart 워시wash. 멋있지 않은가. 내가 받은 인상은 딱 그랬다(상표 등록은 힘들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멋있게 가면 원오브뎀one of them이 되겠지. 멋있는 이름이라 해서 더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 역시 다른 누구만큼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대표는 어떻게 이 제품을 마케팅하고 있을까? 그야말로 Raw했다. 말그대로 날 것 같았다. 온 몸에 기름종이를 떠올리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이 엄동설한에 인스타그램 해쉬태그 이벤트를 했다. 첫날은 명동에서 했다. 비가 와서 망했다고 한다. 두번째는 연플리에서 했다. 너무 추워서 접었다고 했다. 세 번째 날은 아직 예고가 나오지 않았지만 직접 가서 응원해드리려 한다. 조만간 반백살이 되시는 대표님이, 딱하다고 해야 하나, 열정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어떤 표현도 부적확한 이름모를 감정이 페이스북의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드는 한 가지 마음.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잘되라. 잘되라. 어찌 되었든간에 잘 될지어다.


이 정도의 열정이 당신에게도 있는가. 나는 차마 답하지 못하겠다.

이쯤 되면 커밍아웃이다. 나는 스킨미소만 쓴다. 이 회사를 알기 때문이다. 이 대표를 믿기 때문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를 나와 백수가 되는 그날, 이 대표는 한 마디 논의도 없이 내게 일을 주었다. 그후로 일년 간 소개받은 회사만 대여섯 개에 이른다. 그분들 대부분은 두 번 이상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가 아니었으면 나의 미래가 어땠을지는 짐작도 할 수 없겠다. 하지만 내가 이 브랜드의 팬이 된 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 대표는 욕심이 없다. 그저 지금의 직원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난 8년을 달려왔다. 만드는 제품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자리에서, 만들 수 있는 만큼의 제품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과 팔아온 모습을 나는 보아왔다. 그래서 그 절실함에 마음이 간다. 이 땅에 '개기름 지우개' 하나만큼은, '모공 제품'에 관한 한은, 최고의 화장품 회사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 만큼 나도 '간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개기름 지우개'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같은 사람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가 만든 제품이라면 성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돈 버는 것이 목적인 회사라면 진즉에 사라졌을 회사다. 그러니 '개기름' 하나만큼은 이 회사에 몰아주자. 모공 하나만큼은 8년을 고민해온 회사이니. 온갖 가짜와 사기꾼이 판 치는 이 바닥에서 그렇게 3년을 지켜보아온 회사다. 돈을 받고 쓰는 글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 이 '작은' 회사가 어떻게 그 절실함으로 시장을 개척하는지 지켜보아 보자. 화려한 투자도, 유학 다녀온 마케터도, 간지나는 동영상 광고도 없지만, '개기름'을 지우는데 그 따위가 다 무슨 필요인가. 이런 회사 하나쯤 잘 되어도 누군가가 배 아픈 일은 없을 터이니. 자 이제 같이 주문을 외워보자. 잘 되라, 잘 되라, 잘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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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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