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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의 작은 브랜드, 작지 않은 스토리·2,978·2018. 12. 03

마성의 스토리텔러, 발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주문이 뚝 끊겼다. 2009년 순손실만 약 1400만엔, 빚만 3000만엔에 이르렀다. 한 개에 35만원 하는 알류미늄 재질의 노트북 거치대를 팔던 테라오 겐은 그제서야 굳게 마음을 먹었다. 불황이 더 심해지면 소비자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고 남겨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얼 필요로 할까? 소비 전력이 1000W가 넘는 에어컨은 이런 시대에 더는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연의 바람'을 재현하는 선풍기를 떠올렸다. 2010년에 탄생한 이중날개 구조의 혁신적인 선풍기 '그린팬'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왜 일반 선풍기 바람은 오래 쐴수록 머리가 아픈 것일까.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 끝에 일반 선풍기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바람이 생겨 피부에 자극이 심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가 새로 개발한 그린팬은 중앙과 외곽의 두부분에서 보내는 풍속이 달라 소용돌이가 사라졌다. 아울러 고가의 직류 모터를 달아 전력 소비를 10분의 1까지 줄였다. 일반 선풍기보다 10배나 비쌌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전력난이 이어지면서 그린팬은 대히트를 기록한다. 그리고 연이어 내놓은 가습기 레인과 공기청정기 에어엔진이 잇따라 출시되어 성공을 거둔다. '소형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발뮤다는 이렇게 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성공 스토리' 중 하나가 아닌가 할 때에... 한 가지 이야기가 내 눈길을 끌었다.


선풍기를 팔지 않는다, '기분 좋은 바람'을 판다...


17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테라오 겐은 어머니의 보험금 3천만원을 들고 유럽을 여행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지중해를 따라 1년간 여행을 한 그는 원래 기타리스트였다. 10년 간 연주활동을 하고 록 밴드 생활도 했지만 결국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햇다. 그런 그가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그 자체가 연주처럼 '창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잠을 자기 한 시간 정도는 전자기타를 연주하거나 작곡을 한다고 한다. 그런 그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만 8번을 수상한 배경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나는 그의 탁월한 '스토리 텔링'에 그 비밀의 일부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팬의 성공이 그저 혁신적인 기술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팔았다는 증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선풍기를 팔지 않았다. 대신 '기분 좋은 바람'을 팔았다.


그는 선풍기를 개발하기에 앞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계곡에서 뛰어놀며 맞던 바람은 왜 그렇게 상쾌했을까? 오래도록 바람을 맞아도 왜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까? 머리가 아프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그의 연구도 깊어졌다. 그는 자신의 제품의 만들던 공장에서 인부들이 거대한 선풍기 바람을 바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선풍기 바람을 벽에 부딪혀 돌아온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래야만 오래 바람을 쐬도 머리가 아프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린팬의 놀라운 성공이 시작됐다. 바람의 소용돌이를 막아주는 그린팬의 이중날개는 이런 과정을 통해 개발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어린 시절 여름날의 그 자신을 떠올렸다. 계곡을 누비며 뛰어놀던 그 시절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설득이 아닌 공감, 창조가 아닌 발견, 기술이 아닌 이야기... 그렇다 그린팬의 성공 뒤에는 어려운 기술이 아닌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나는 발뮤다의 성공 뒤에 이러한 공감의 스토리텔링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뒤이어 성공한 '더 토스터'기는 개발이 한창이던 2014년 5월, 어느 비오던 날의 바베큐 파티장에서 탄생했다. 전자레인지를 거쳐 나오면 언제나 빵은 수분을 잃거나 딱딱해진다. 하지만 그날의 토스터는 달랐다. 직원 중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바비큐 파티를 한 날은 비가 왔어요.' 그랬다. 그날은 공기 중의 수분 때문에 빵이 유달리 촉촉한채 익고 있었다. 그 원리를 이용해 5cc 용량의 작은 컵을 동봉한 발뮤다의 '더 토스터'기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 제품에 대한 열광은 지금도 사그러들지 않은 채 국내에도 상륙했다. 죽어가는 빵을 살리는 마술같은 토스터기로. 기존 토스터기의 10배 가격을 받고도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물론 핵심은 기술력이다. 평범한 토스터기에 아무리 신화 같은 이야기를 붙이려 한 들 사람들이 납득할리 만무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16시간은 근무하는 지독한 일벌레인 그에게도 '기술'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더 토스터기의 빵을 소개하면서 젊은 시절의 유럽 여행을 이야기했다. 배고픔에 지친 그에게 전해지던 시골 빵집 화덕을 거쳐 나온 빵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는 본능적인 이야기꾼인지 모른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 한들 거대한 가전 업계의 그것을 압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야기'를 '선택'한 것인지 모른다.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을, 그래서 그에 상응하는 몇 배의 값어치를 대신할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는 포장이 아니다. 발뮤다가 그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기술이 그 이야기를 '포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 그저 발견했을 뿐이다. 아마 지금도 그는 하루에 16시간을 일하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답게. 집요하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의 성공은 어려울지 모른다. 우리는 다름아닌 그의 '이야기'에 중독되었음으로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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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철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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