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론으로 살피는 역사.
한순구 교수의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최근 유튜브 영상 콘텐츠를 통해 ‘게임이론’에 흥미를 가지던 차에 연세대 한순구 교수의 영상을 보게 되었고, 이러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 책까지 닿게 되었네요.
한순구 교수의 경우 학교에서 수강생들이 늘 넘치는 인기 강의를 하는 교수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이 책의 나레이션을 보면 인기 있을만큼 스토리 구성이 좋습니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이를 게임 이론에서 분석하고, 더불어 현실 사회에서 자신의 예를 덧대어 이야기를 펼치다보니, 과거 단면 - 게임 이론 - 현재 단면이 자연스럽게 엮이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읽기 수월하고 역사를 평소에 좋아하는 제가 보기엔 더 없이 술술 읽히는 책이었어요.
저는 책을 펼치자마자 그 날 다 읽었으니, 문장도 참 쉽게 잘 쓰여졌다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가끔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들은 지나치게 자신의 문장력, 어휘력을 과신하기 위해 글을 쓰나 할 정도로 문장이 읽다가 턱턱 끊기는 경험을 주는 책들도 있습니다.
너무 현학적인 단어를 남발해도,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도 쉬 읽히지 않는데,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을 보면 평소에도 말을 어렵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잘 쓰는 글은 사실 어려운 단어를 쓰기 보다는 쉬운 단어로 풀이해서도 이해할 수 있고 단숨에 읽게 만드는 몰입을 만드는 글이겠죠.
좌우간, 이 책은 초반의 항우-유방의 이야기로 관심을 끌었고, 고구려-백제-신라 삼국통일에 있어서의 김춘추의 에피소드로 몰입감을 더했고 조선을 지나 근대의 나폴레옹 이야기까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끌만한 에피소드들을 넣어 게임 이론에서 접근했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가장 와닿았던 에피소드 2개는 항우-유방의 최후 승리와 항우가 패배했던 원인을 게임이론에서 분석했던 것, 그리고 김춘추가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편에 나오는 ‘도덕적 해이’ 이론입니다.
비협조적 게임
우선 항우-유방의 이야기에서는 항우는 진나라를 이기고 천하를 도모하려고 했지만 결국 유방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함께 싸워서 공을 세운 각 나라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했지만, 정작 항우-유방과의 전투에서는 이들이 적극 돕지 않으면서 사면초가에 몰리고 죽게 된 겁니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린다는 이 ‘사면초가’ 의 유래도 항우-유방 전쟁편에서 나온 이야기이죠.
(출처: 지식백과)
좌우간, 항우가 그렇게 잘 싸워놓고도 결국 유방에게 패했는데 만약 게임 이론 측면에서 지지 않을 싸움을 하기 위해, 항우는 어떤 행동을 했어야 할까요?
우선 항우가 진나라와 전쟁하고 천하를 도모하기 전에 초나라 안에서의 항우에 반대하는 세력 (예:의제)의 힘을 확실히 빼앗고 그로 하여금 그저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만들어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쟁이 종료된 후에도 왕이었던 초나라 의제와 알력이 없었을 겁니다.
즉, 이 부분은 내가 세력을 확하고자 한다면 내부의 문제를 정리정돈을 해두어야 한다는 거죠. 이 부분은 모택동-장개석 이야기에서도 일치합니다. 장개석은 일본 식민 통치로부터 중국을 구하려는 전쟁을 했지만 내부 중국공산당을 먼저 제거하지 않고 외침에 맞서싸웠죠.
그리고 일본군이 물러갔지만 힘이 빠진 장개석은 모택동의 군대에 의해 중국 본토에서 축출돼 대만으로 밀려났습니다.
두번째로 항우는 논공행상을 너무 빨리 했다는 것도 문제였죠. 전쟁 후 진나라를 정복한 다음에 공로를 쌓은 장수들에게 영토를 빠르게 나누어주다보니, 정작 유방-항우 전쟁이 발생했을 때 이미 받을 거 다 받은 사람들이 도우러 갈리 만무했던 겁니다.
즉 게임이론 측면에서 봤을 때 자신이 쥔 칼자루를 최대한 오래 움켜잡고 있어야 장수들이 항우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면서 관계가 유지가 되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항우는 전쟁 후 고향인 초나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무기, 식량, 군사를 보충할 수 있었던 경제력이 높았던 진나라의 관중 땅을 차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관중땅을 유방이 차지했기 때문에 항우는 4년 전쟁에서 밀렸다고 봅니다.
저는 이 사례를 보면서 마치 유산 상속과 자녀들이 부모를 대하는 모습들과 오버랩되어 보였습니다. 대체로 소송과 갈등의 다양한 사연을 기사 등을 통해 접해보면 부모가 가진 재산을 빠르게 자녀들에게 넘겼을 때 자녀가 부모 부양에 대해 소홀한 케이스들이 참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팀에서의 도덕적 해이
추가로, 팀에서 도덕적 해이가 없어야 살아남는다는 내용의 삼국통일 일화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책에서 언급하는 도덕적 해이는 2016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뱅트 흘름스트룀 교수가 1982년에 쓴 "팀에서의 도덕적 해이"라는 논문을 통해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스토리가 조직관리에서도 정말 중요한 인사이트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혼자서 수행할 수 없는 작업을 여러 명이 힘을 합해 할 때 남 모르게 꾀를 부리는 행위를 '도덕적 해이'라 부르는데,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 보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4명의 작업자가 피아노를 배달한다고 할게요. 모두 피아노 한쪽 끝을 잡고 배달해 계단도 오르고 좁은 통로도 가야 하는 고난도 작업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3번 작업자가 가끔 힘을 별로 쓰지 않습니다. 물론 3번 작업자는 얼굴을 항상 찌푸리며 힘든 표정을 지으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모습을 보이지만 연기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3번 작업자가 도덕적 해이를 보이면 다른 작업자 셋은 3번 작업자 몫까지 나눠 감당해야 피아노를 옮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다 하더라도 1명 분의 노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작업 속도는 더 늦어질 것입니다.
네 명 모두가 동일한 노력을 쏟아야 보통 하루에 10개 배달하는데 3번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면 하루 7개밖에 배달을 못하는 상황이 되는거죠.
물론 작업자들은 이 중 꾀부리는 애가 있다는 걸 짐작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또한 문제는 한 사람이 꾀를 부리기 시작하면 성실히 일하던 1,2,4번도 화가나 꾀를 부리게 되고 결국 이 팀은 하루에 피아노 1대만 배달하는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저는 이게 정말 조직관리,운영에서 중요한 질문이라고 봅니다. 제가 참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뱅트 흘름스트룀 교수가 논문에서 제시한 해답은 심플합니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한명이라도 꾀를 부리면 조직이 망해 모든 구성원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점을 주지시키라는 것입니다.
3번 작업자가 꾀를 부려 피아노 배달 작업이 지연될 때 이를 3번이라 밝히고 처벌하면 문제가 쉽게 해결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렇게 꾀 부리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오히려 찾아서 주의를 줄 경우 모함을 한다며 펄펄 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꾀를 부린 개인을 처벌하지 못한다면 성실히 일한 작업가까지 포함해 네명의 작업자 전원을 처벌하는 방법을 쓸 수 있습니다. 이는 아마 최후의 방법일 것입니다.
즉 피아노 배달 회사 사장은 네 명 작업자 중 누가 꾀를 부리는 지 알아내려 하지 않고, 하루에 10개 미만 배달시 네 명 모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방법을 쓸 수 있어요. 한마디로 한 사람이라도 꾀를 부리면 단체기합을 주는 방식인 거죠.
그러면 3번 작업자는 자신이 꾀를 부린다는 것이 들킬 염려는 없지만 그와 상관없이 하루 일당을 못 받게 되므로 정신차리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아쉽지 않나요?
저는 논문에서 교수가 이렇게 방법을 제시했다고 하지만, 못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게임 이론에서는 이렇게 도덕적 해이에 따라 팀워크가 흔들리기도 하지만, 단체 기합을 주는 방법으로 문제를 푼다? 이게 조직에서 가능할까요? 인센티브를 뺏어야 하는 걸까요?
조직관리를 하다보면 언제든 조직 내에 확률상 ‘또라이’도 있고 ‘프리라이더’도 있습니다. 조직이 상당히 클 경우에는 이러한 사람들은 일종의 제품에서 ‘불량률’ 정도로 취급해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조직에서는 개인의 역량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각자의 몫을 해줘야 하고, 한 사람이라도 도덕적 해이를 보이게 되면 조직의 팀워크에 많은 훼손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프리라이더, 도덕적 해이를 보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막막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그렇게 도덕적 해이를 보이는 편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프리라이더는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우리는 나름 일을 하고 있다, 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지적을 할 경우 반발을 하는 것이고, 일을 열심히 하라고 할 경우 조직에 불만 덩어리가 되어 회사 조직 분위기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인사 쪽에 오래 일한 분의 조언을 들어보면, 그런 말씀을 합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만약 그 사람이 어떠한 계기로 바뀌게 되었다면 이전의 그라는 존재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바뀐 후가 그 사람의 본질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시간은 조직 내에서 직원으로 생활했고, 회사를 경영한 건 다 합쳐봐야 1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짧은 조직 운영을 통해서도 인사통이었던 그 분의 말씀에 대해 공감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딱 맞는 사람을 뽑아서 배치를 하는 것이 인사팀의 역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와 핏한 사람을 찾는 것이 참 예술적인 작업인데, 작은 조직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인재가 쉬이 들어와주지 않으니, 중소기업으로서는 항상 인사가 만사입니다.
조직 내의 프리라이더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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