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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그리고 사람 이야기·795·2020. 12. 24

원칙 vs. 융통성

리더와 인사가 반드시 물어야 할 필수 체크포인트

 벌써 12월 말이다. 인사팀의 일 년 캘린더로 가장 많은 일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한 해 열심히 지어놓은 농사에 대한 마무리, 임원인사와 조직개편, 개개인에 대한 피드백과 평가, 내년도의 계획과 전략 수립뿐 아니라, 또 한 번의 월급이라 할 수 있는 인센티브까지 굵직한 인사 이벤트가 한가득이다. 이 가운데 크리스마스부터 시작되는 연휴가 자리 잡고 있어 한편으로는 마음이 급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들뜨고 설레는 기분이 들곤 하는 시기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로 인한 조직 내 업무 환경, 협업 방식, 소통 채널의 변화가 눈에 띄었고, 디지털 전환에 대한 진화가 한 층 빨라진 한 해라 하겠다. 인사(HR) 역시 숨 가쁜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로 인한 업무 인프라의 업그레이드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과를 만드는 조직을 만들어야 했다. 무엇보다 전 구성원이 새로운 환경과 협업 체계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관리 프로그램, 새로운 시대를 여는 리더십의 정의와 리더 양성, 무엇보다 세계에 퍼져있는 직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일도 우리의 몫이었다.

 눈여겨볼 것은, 위의 어젠다들 대부분이 완전히 새롭게 마주하는 상황 속에서 여러 인사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던 일이라는 점이다. 격변의 시기, 인사가 가진 여러 제도와 원칙들이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이 끝도 없이 나타났다. 직원 개개인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상황과 성과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어 가면서 지금껏 아무 문제없이 유지되던 기준과 원칙들은 다양한 예외와 융통성을 요구했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실, 현업 인사를 운영하면서 상황에 맞게 유권해석을 하고, 유연한 제도 운영을 통해 직원들에게 효능감을 주고 성과 창출을 지원하는 일은 인사의 필수적인 역할임에 이견이 없다. 명문화된 제도와 기준만을 주장하면 순식간에 '현장을 모르는 사람, 고지식한 인사'로 낙인찍히기 딱 좋은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반면, 제도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인사가 매 상황마다 조금씩 다른 융통성을 발휘할 때 생기는 형평성과 조직 운영상의 이슈도 적지 않다. 또, 각론이 필요한 때마다 새로운 부칙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매년 말, 성과관리 담당자가 수많은 부서장들과 평가 배분률에 대한 문제로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니 이런 생각이 절실해졌다. 최근 상대평가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일정 부분의 상위평가자의 규모를 정하고 이에 대한 기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국내 기업들의 일반적인 프랙티스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떤 리더는 기준을 칼같이 맞추고, 하위 평가자도 상당수 지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누구는 상위 배분율도 한참을 어기고도, 예외를 인정해 달라 때쓴다. 

 연말을 보내며, 인사와 현장 리더들이 지금까지 운영되어 온 원칙과 이에 대한 융통성을 판단할 때 꼭 물었으면 하는 질문들을 정리해 보았다. 

1. 기준(원칙)이 가지고 있는 취지와 본질에 부합하는 융통성인가?
 모든 기준과 제도는 절대다수의 구성원들이 모인 조직 운영에 필요한 길라잡이일 뿐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모든 기준과 원칙은 그 취지와 수립 배경을 가지고 있고 이는 조직운영의 지속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이 제도의 본질을 끝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앞에서 든 예의 경우, 상위 평가 배분율의 융통성을 인정해 주기 위한 몇 가지 기본 사항들이 필요하다. 우수한 성과를 내고, 조직에 기여한 개인과 단위 조직을 인정하기 위해 만든 성과관리 제도의 본질을 상기시키는 것은 필수다. 전체 조직 성과에 기여한 부분에 대한 함의, 타 밸류체인의 인정, 궁극적으로 숫자를 만드는데 기여한 임팩트 등 융통성의 영역이 기존 제도의 취지와 본질을 강화하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저 까칠하고 목소리 큰 리더 밑에 있는 직원들이 우대받는다는 케이스가 발생하지 않도록 판단에 앞서 냉철하고 깊이 있게 제도 운영의 근본을 상기시켜 보아야 한다.

2. 긍정 효과(선순환)를 부르는가? 부정적 효과(악순환)가 염려되는가?
 융통성을 발휘해 예외를 허락한 케이스의 방향성과 파급력은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 중 하나다. 사실 예외를 적용하기에 가장 고민이 되는 포인트를 꼽으라면 바로 이 부분이다. 이번 예외가 기준을 잘 지킨 사람들을 순진한 바보로 만들어, 예외를 활용(?)하는 사람이 더 이득을 보게 되는 경우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대다수의 직원들이 선의를 가지고 제도를 준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패자로 만들지 않는 의사결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모럴해저드는 빠르게 퍼져 나갈 가능성이 있다. 성숙한 조직 구성원들이라도 기준의 범위가 달라진 부분을 쉽사리 캐치할 뿐 아니라, 합리적으로 접근해 더 많은 이득(혜택)이 있게 된다면 이를 망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 지금의 제도로 충분한가?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가?
 마지막은, 예외가 선례가 되어 계속해서 이와 같은 요청이 재발하지 않을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융통성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예외적인 경우가 많겠지만, 향후 이러한 케이스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 예상된다면 우리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융통성을 적용할 논리의 포인트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을 경우, 표면적인 선례가 반복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은 환경과 사회적 기준이 바뀌어 앞으로도 다수에 대해 이런 예외를 적용해야 할 것이 예상된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 기준과 원칙을 재점검하고, 시대와 사람에 맞게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즉, 이 계기를 통해 지금의 원칙과 제도가 적절한 기준으로 수립, 운영되고 있는지 체크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기준과 융통성에 대한 문제는 인사뿐 아니라, 많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때로는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기도 한다. 규정이 직원들의 자율성과 동기부여를 저해하는 것을 우려하는 경영자도 상당수 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지구 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의 CEO가 '규칙 없음(No Rules Rules)'라는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이에 동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리더나 인사 담당자를 넘어 조직 구성원 모두가 본질에 집중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융통성이 적용되는 방식과 방향이 조직과 제도의 지속 운영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지, 전 구성원이 그 예외나 일부 변경에 있어서도 더 큰 수혜와 건강한 논의가 일어나 궁극적으로는 긍정적 효과가 더 많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 말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조직 안에서 생활하고, 성과를 만들고, 인정받아 성장하는 생태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난 1년간의 소회를 나누기도 해야겠지만 또 새로운 2021년,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 역시 필요한 시기다. 특히 건전하고 단단한 조직의 기본 가정(Basic Assumption), 맥락(Context)을 만들기 위한 노력 역시 고민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결국, 조직 구성원 대다수가 믿고 따르는 기준과 원칙, 나아가 이를 지지하고 강화할 구성원들의 믿음이 조직 운영의 뼈대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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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수
삼성물산, IBM, 로레알에서 현업 인사 업무를 수행하였고,
삼성경제연구소 인사조직실 수석연구원으로 인사, 조직문화 관련 컨설팅과 연구를 경험했다.
현재 ‘조직과 사람 이야기’라는 제목의 브런치(brunch.co.kr/seanchoi-hr)를 연재 중이며,
저서로는 ‘인재경영을 바라보는 두 시선’, ‘고용가능성-목마른 기업, 애타는 인재가 마주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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