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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마케팅과 브랜딩, 로켓티어·311·2019. 08. 28

옛날 옛적에 빙수가 있었다

컨셉을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법

달인의 가게입니다. 간판부터 삘이 오죠?

지난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날이 더워져서 후식으로 빙수를 먹자는 이야기가 나와 빙수 맛집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요새 유행하는 밀크빙수를 안 좋아하셔서, 옛날 스타일의 얼음이 아식아삭 씹히는 빙수를 찾아 검색을 해서 달인이 운영한다는 가게를 찾았습니다. 빙수 팥을 직접 삶아 내는 곳이라기에 더욱 기대가 됐습니다.



찾아간 가게는 크지 않았습니다. 4인용 테이블 3조가 실내 좌석의 전부여서, 많은 사람들이 가게 바깥 길거리에 펴 놓은 테이블에서 빙수를 먹고 있었습니다.


빙수 종류는 의외로 많았는데 옛날 빙수가 가장 저렴한 3,500원이었고, 7,000원짜리까지 있었습니다.


메뉴가 뭔가 많은데 '군밤'이 제일 눈에 띈다

옛날 빙수를 시키고 앉아 기다리며서 찬찬히 가게를 살펴보니, 먹고 가는 사람 반, 포장해 가는 사람 반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포장메뉴 역시 다양했고 옛날 팥빙수가 제일 인기였지만, 옥수수와 군고구마 주문도 꽤 됐습니다. 이 가게의 조용한 머니메이커는 옥수수와 고구마일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빙수를 먹으며 도대체 "옛날"이 대체 언제일까 생각했습니다. 요새 대중문화 트렌드를 이끄는 옛날은 개화기나 일제강점기 정도는 아니고, 70년대~90년대 정도의 시대범위라고 생각합니다. 먹거리에 붙은 옛날이라는 메뉴를 생각해 보니, 옛날 돈까스, 옛날 짜장면, 옛날 통닭.. 등이 떠올랐습니다. 빙수도 이제 옛날 스타일의 팥빙수와 최신 트렌드 빙수들로 확실히 나뉩니다.


설빙을 필두로 한 밀크빙수로 대세가 바뀌기 전, 빙수는 팥빙수와 동의어였고,  당연히 얼음을 갈아서 팥과 우유(연유)를 뿌리고 가끔은 현란한 젤리와 찹쌀떡이나 콩고물 묻힌 찰떡을 듬뿍 올려 먹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빙수는 팥이지! 라는 사람이지만 메론빙수, 수박빙수, 딸기빙수를 1년에 한두번은 꼭 먹습니다. 별미처럼요. 설빙을 갈 때마다 매출 자료가 무척 궁금합니다. 팥빙수와 과일빙수의 비중이나 성장세가 어떨지 알고 싶어서요.



컨셉은 속속들이 차 있어야 힘이 생긴다


생활의 달인 빙수 가게는 "옛날" 이라는 컨셉을 가게 운영 전반에 영민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름부터 "옛날"팥빙수라서 공공연하게 예전 감성을 부채질 합니다. 밀크빙수나 초코빙수처럼 다른 빙수 메뉴들도 꽤나 맛있어 보이고 예쁜 모양새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셈인지 다른 빙수 메뉴보다 인기가 좋은 것은 옥수수와 군고구마였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고객들에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옛날 빙수를 찾는 사람은 뉴트로를 소비하는 젊은 층일 수도 있지만, 보다 핵심적인 고객은 옛날 빙수를 즐겨 먹던 사람들입니다. 타겟으로 하는 주요고객 데모그래픽이 40~50대 이상일 것이란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먹고 싶어 할 "옛날" 감성의 또 다른 주전부리가 뭘까 생각해 보니, 옥수수, 고구마, 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팥빙수가 메인 메뉴라면 옥수수와 고구마는 옛날을 완성시키는 구색 메뉴입니다. 그리고 옥수수와 고구마에게는 빙수가 갖지 못한 미덕이 있습니다.


빙수는 달콤하고 시원하지만, 부드러움은 없고, 출출함을 달래기엔 부족합니다. 그런데 옥수수나 고구마는 맛에서는 빙수와 달달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감과 물성, 먹는 방법에서 빙수와 완전히 달라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는 즐거움과 배부름까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해도 팥빙수를 두 그릇 먹는 경우는 잘 없든, 빙수 먹고 같이 먹을 수 있는 어울리는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옥고밤(옥수수와 고구마와 밤)은 팥과 맛, 향이 잘 어울리고, 식감을 다양하게 충족시키는 퍼펙트 매치입니다. "옛날" 컨셉에 일치하고, 맛에서 연관성 높으며, 식감에서는 빙수가 주지 못하는 먹는 재미를 채워주니까 주 메뉴인 빙수의 매출이 깎일 걱정없이 함께 판매할 수 있으니 사이드메뉴 선택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객 입장에선 옛날 팥빙수를 먹고, 생뚱맞은 핫케익을 추가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실제로 저도 팥빙수를 매장에서 먹으면서 집에 가져가려고 옥수수 두봉지와 고구마 한봉지를 샀습니다.


뭔가 첨단스멜 뿜뿜하는 고구마 로스팅 머신(?!)


제발로 걸어들어오게 하기


가게 운영면에서도 옥고밤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매장 오너 입장에서 빙수의 단점은 워크인 고객을 유인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원래 여름에 시원하게 먹는 음식이니 날씨가 유인책인 셈입니다. 뒤집어 보면 날씨라는 자연조건 아니고는 고객을 매장으로 유인할 요인이 별로 없습니다. 유명한 설빙도 냄새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는 못합니다.


이제는 유명 가게가 돼서 손님들이 알아서들 찾아오겠지만, 맛집으로 소문나기 전에는 오픈하고 손님을 기다리며 답답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먹어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없는 음식이니 맛있어요! 는 홍보문구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한번 잡솨봐~하고 길 가는 사람의 소매를 끌어당길 수는 없으니 무엇으로 손님의 발길을 멈추게 할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매장 유인 전략으로 맛있는/좋은 냄새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후각은 시각 다음으로 강한 감각기관이라서 후각을 잘 활용하면 아주 강렬한 연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삿날 온통 먼지투서이로 둘러 앉아 먹던 짜장면과 탕수육 냄새, 포근하게 안아주던 어머니의 옷자락에서 나던 로션 냄새, 집으로 가는 길 어귀의 포장마차에서 먹던 오뎅 국물과 튀김 냄새.. 다들 특정 향 또는 냄새와 연관된 좋기도 나쁘기도 한 강렬한 기억들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비지 냄새를 싫어하시는데 어릴 적, 너무 가난해 콩비지로 세끼를 먹었던 것이 당신께는 아주 고통스러운 가난한 유년을 떠올리게 해서라고 하십니다. 냄새는 이렇게 기억을 소환하고 대상에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긍정적 또는 부정적  연상을 형성하는 힘이 아주 강합니다.


달인의 가게 전면에는 옥수수 찜통과 군고구마통이 맛있는 냄새를 솔솔 피우고 있습니다. 옥수수 찜통 뒤에는 밤을 굽는 오븐도 있습니다. 이 3가지 음식들이 익어가는 냄새가 하도 달달하고 강렬하다보니 그냥 지나가려다가도 냄새 때문에 한번 쳐다보고,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제가 빙수를 먹는 동안 가게 앞을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옥수수 찜기 앞으로 와서 옥수수를 사 가거나, 어, 빙수도 있네요?! 하며 빙수와 고구마를 함께 사 가는 손님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고객유인전략이 성공한 것입니다.



가성비는 확신 구매를 돕는다


고구마와 옥수수는 한 봉지에 5개 내외 들어있고 5천원입니다. 옛날빙수 한 그릇이 3천5백원이니 1,500원이 더 비싸지만 빙수 한 그릇에 비하면 양이 훨씬 많으니 덜 비싸게 느껴집니다. 메인 메뉴보다 가성비가 훨씬 좋게 인식이 되니 보조 메뉴지만 매출 기여도가 상당할 것입니다. 게다가 옥고밤만 사가는 손님들도 제법 있어서 단독으로도 매출을 꽤나 일으켜 주고 있습니다.


계절성 강한 빙수와 달리 옥고밤은 사철 먹을 수 있습니다. 원래 여름에 나는 옥수수와 겨울에 맛있지만 다이어트 메뉴 베스트아이템인 고구마는 빙수의 계절적 한계를 충분히 보완해 줍니다. 빙수집들이 팥죽을 같이 하는 이유가 팥이라는 동일 재료로 동절기 매상을 방어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빙수와 팥죽은 대중성에서 타이틀매치 같은 급이 아닙니다.  


베스트셀러가 있지만 훨씬 덜 팔리는 메뉴를 없애지 않고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고객과 상황을 커버하고, 베스트셀러를 돋보이게도 하려는 전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가게의 옥고밤은 빙수의 장점을 돋보이게도 하고, 빙수의 한계-계절성과 취향-로 인한 기회상실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운영의 효율은 항상 중요하다


그런데 이 가게가 옥고밤이 아닌 다른 보조메뉴로 판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호떡이나 만두, 호박엿이라던가 곰보빵, 뻥튀기를 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의 식감이나 온도, 맛과 조리과정, 전문성과 운영효율성을 생각하면 옥고밤만한 메뉴가 없습니다. 옥고밤은 수확해 포장되어 있는 그대로 가져와서 별도 준비과정 없이-세척 정도?-즉시 조리하고 바로 판매가능합니다. 찜기와 굽는 통 하나면 더 이상 갖출 것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손이 가는 빙수를 팔면서도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 병행할 수 있습니다.


매장 구석구석마다 산지에서 실어서 가게로 바로 온 것 같은 노란 고구마박스와 옥수수 마대자루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달인의 가게가 가진 또다른 경쟁력입니디. 자신의 눈앞에서 쪄지고 있는 옥수수와 구워지고 있는 고구마를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았는데, 눈을 돌리니 찜통과 로스터 입장 대기를 타고 있는 옥수수와 고구마가 보입니다.


음식은 회전이 잘 되는 곳에서 먹어야 신선한 것을 먹을 수 있다는게 상식인데 가게에 쌓아둔 상자들은 아무런 세일즈 문구없이 스스로 신선+인기를 증명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남들도 많이 사 먹는거라면 의심의 여지없이 맛있을거라는 확신이 생겨 살까말까하는 망설임이 줄어듭니다..


이틀 전에 들어온 고구마가 다섯 박스요!


컨셉은 A to Z 꼼꼼한 실천


위에서 길게 컨셉이니 운영이니 이야기했지만 사실 고객 입장에선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은 모르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빙수 사러 왔는데 옥고밤이 있어 잘됐다 생각하며 사고, 앞으로 또 사러 와 주면 그걸로 고객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컨셉은 말로 떠들고 어딘가에 붙여 놓는게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어 이건 왜이렇지? 요건 이상한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려면 비즈니스 행위 하나 하나에 다 스며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고객들은 당연하지! 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제품을 사용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또 이용해 줍니다.


혹시 자신의 회사나 브랜드, 매장 컨셉 좋아 라는 말은 듣는다면 고객이 브랜드 접점 어디서도 어색하거나 걸리적거리는 경험을 하지 않았고, 회사나 브랜드가 컨셉 일관성을 잘 지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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