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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그리고 사람 이야기·365·2020. 03. 26

재택이 만든 새로운 스트레스

눈 앞에 있어야 일을 한다는 고정관념을 대신하는 새로운 압박들

 재택근무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코로나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일상은 가히 폭발적이다. 특히 수많은 기업과 리더들은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재택근무 환경에 빠르게 적응 중이다. 단언컨대, 이런 환경을 조성하라고 외쳐도 절대 도입이 되지 않았을 상황을 코로나가 만들어준 셈이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눈 앞에 있어야 일을 하는 것'이라는 리더의 인식은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아무리 선진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내놓으라 하는 조직개발 프로그램들을 가져다주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디지털 협업 툴이 급속히 발전함에도 기성세대와 경영진이 이를 사용하고 리드하는 변화는 소원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고, 출근을 하고 싶어도 출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준비가 되었든 안 되었든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고, 리더들은 이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 특히 디지털 보안, VPN, 메신저, 화상회의 툴 등 각자의 집에서 노트북을 통해 협업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필요한 도구들이 단 며칠 만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대단한 적응력이다.


 순식간에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게 된 재택근무 환경은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오늘은 지난 4주간 필자가 경험한 대한민국 재택근무가 만든 새로운 압박(Pressure)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온라인(Online) 강박
 사무실에서 얼굴을 맞대지 않고 일을 해나가야 하는 환경에 놓인 모든 리더와 구성원들이 겪는 첫 번째 압박은 온라인에 대한 스트레스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온라인이란 비단 메신저의 초록색 불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갑자기 요청받는 비디오 콜, 이메일과 SMS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에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만 할 것 같은 새로운 강박이 생겨났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냉장고에서 물 한잔을 꺼내더라도 전화기를 들고 움직이거나 이어폰을 낀 채 움직인다. 그 누가 뭐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온라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일을 안 하거나 몰입이 떨어진다는 인식으로 비칠까 두렵다. 회사에 있었다면 잠깐의 휴식, 커피를 한 잔 사 오고, 잠시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느끼지 않았던 감정들이다.  

2. 덮이지 않는 노트북
 '재택근무 잘하는 법'이라는 종류의 기사와 유튜브 동영상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빠지지 않는 항목을 꼽으라면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을 명확히 구분하라는 점이다. 이에 집에서도 물리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출근과 퇴근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조언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재택근무를 해야 하거나, 아이라도 있는 집이라면 이런 주문은 소원하기만 하다. 별도의 서재가 있더라도 나머지 한 명은 식탁이나 거실에 자리를 잡아야 할 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아이들을 그저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비디오 콘퍼런스가 잡힌 시간에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때문에 가족들의 얼굴을 알게 되는 행운(?)이 있긴 하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은 덤이다.
 무엇보다 출근과 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채 10초가 걸리지 않는 환경에 놓이면서 근무시간을 특정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 근무하던 회사에서 자주 듣던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금에 빗대어 보자면 '덮이지 않는 노트북'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실제로 지난 4주간의 근무패턴을 분석해보니 연장근로는 급격히 늘어났다. 최근 대다수의 기업이 52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시간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덕분에 이러한 비교가 아주 수월 해졌다. 특히 '눈에 보여야 일을 한다'는 고정관념을 장시간 근로가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3. 자기 존재감
 하루아침에 맞이하게 된 재택근무는 각자가 일한 결과를 각자가 어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어떤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않거나, 일상적인 운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특별히 소통할 기회를 찾지 못한다. 클라우드 업무 리스트에 완료 마크를 채워 넣으며 자기 보람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이를 가지고 따로 전화를 한다거나 화상회의를 잡지는 않는다. 
 자기 존재감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일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결과로 모든 것을 평가받아야 하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사실 업무가 익숙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시니어들에게 이런 환경은 그다지 제약조건이 되지 않는다. 다만, 한참 성장해야 할 주니어나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재택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도, 즉각적인 피드백도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원 자율좌석제를 도입한 회사가 겪는 새로운 문제 중 하나는 신규 입사자의 부적응이다. 경력이건 신입이건 마찬가지다. 항상 정해진 자리에서 동료 선후배를 마주하고, 협업을 통해 학습하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입사 초기 상당한 외로움을 느낄 뿐 아니라, 적응에도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재택 또한 마찬가지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한 마디만 물어도 해결될 문제를 한층 어렵게 소통해야 할 뿐 아니라, 이런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은 그저 자기가 알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는 사람은 하고, 못하는 사람은 죽어도 못하는 환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인간적 소통
 그렇다. 얼굴을 맞대고 오감(五感)을 느끼며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이 줄어든 것은 재택근무의 가장 취약한 단점이라 하겠다. 자주 소통하고, 사소한 농담을 나누는 노력도 따로 시간을 마련하거나 서로가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사무실에서 어깨를 툭 치며 시작할 수 있었던 잠깐의 소통이 이제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듣게 된 재미있는 상황은 비디오 콜 회식을 했다는 친구들의 후일담이었다. 업무 시간을 마치고 화상회의를 연결해 각자 원하는 술을 책상 위에 가져다 놓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에 대한 목마름과 소통 결핍을 해소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몇 년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자랑하던 다양한 종류의 원격근무를 벤치마킹하며, 우리는 언제쯤 이를 도입할 수 있을까에 대해 수도 없이 고민했다. 재택을 하면서도 혁신을 만들고, 승승장구하는 회사들을 부러워한 것도 사실이다. 또, 근무 방식의 선택권을 직원들에게 넘겨준 회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존경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다양한 고민거리를 한가득 가져다주었다. 생산성, 혁신, 협업의 질을 넘어 인간이 느끼는 새로운 압박과 스트레스가 우리 앞에 놓였다. 새로운 제도 도입 초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신뢰와 배려, 서로에 대한 이해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새로운 일하는 방식, 재택근무가 모든 기업에 부드럽게 자리 잡혀 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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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수
삼성물산, IBM, 로레알에서 현업 인사 업무를 수행하였고,
삼성경제연구소 인사조직실 수석연구원으로 인사, 조직문화 관련 컨설팅과 연구를 경험했다.
현재 ‘조직과 사람 이야기’라는 제목의 브런치(brunch.co.kr/seanchoi-hr)를 연재 중이며,
저서로는 ‘인재경영을 바라보는 두 시선’, ‘고용가능성-목마른 기업, 애타는 인재가 마주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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