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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수만 팔아도 망하지 않는 설빙의 비밀

2025.06.26 08:30

큐레터

조회수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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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한화호텔에서 시작해 현재 설빙에서 활약 중인 계윤숙 CMO의 브랜딩 여정은 하나의 확고한 철학에서 출발합니다.


"브랜딩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그녀의 마케팅 철학은 더플라자 호텔 리뉴얼 프로젝트를 통해 체계화되었습니다. 당시 호텔 업계에 브랜딩 전문가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그녀는 직접 브랜딩 서적을 탐독하고 전문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독학으로 체계적인 브랜딩 방법론을 구축해나갔습니다. "문서 작성 능력이 뛰어나니 브랜딩도 잘할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에서 출발한 그 여정이, 결국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그녀의 토대를 완성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이니스프리 CEO 면접에서 찾아왔습니다. "수익성도 낮고 투자 규모는 큰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그녀의 직설적 질문에, CEO는 "고객이 단 5초라도 '이것이 바로 이니스프리다'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답했습니다. 안정적인 호텔업계를 떠나 화장품업계로 전환하는 위험을 감수하게 만든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니스프리에서의 여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CJ에서 마케터로서의 탄탄한 기본기와 토대를 구축한 그녀에게 진짜 시험대가 된 것은 팀장으로서 경험한 첫 번째 리더십 위기였습니다. "항상 주목받는 마케터"였던 그녀가 처음으로 조직 내 고립감과 깊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이 시련이 오히려 그녀를 팀원들의 전문성 향상에 집중하는 성장 지향적 리더로 변모시켰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창의력과 데이터 접근법이라는 그녀만의 차별화된 전문성은 CJ, 이니스프리, 컨설팅사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창의력은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발전한다"는 철학 아래 브랜드 핵심 가치인 'Green과 제주'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제주 전역을 철저히 탐방"하는 현장 중심 접근법과, 동시에 데이터 80% 검증을 통과해야만 최종 결정을 내리는 체계적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구축한 것이 바로 그 결과입니다.


이렇게 다져진 역량과 철학이 고스란히 발휘되는 곳이 바로 설빙입니다. 계윤숙 CMO만의 독창적 브랜드 관점은 설빙에서 완전히 구현되고 있습니다. 모든 카페가 개인화 트렌드로 향하는 시대에, 그녀는 설빙을 '최후의 소셜 디저트 브랜드'로 재정의했습니다. "Happiness tastes Sweet"라는 브랜드 슬로건 뒤에 숨겨진, 그녀만의 브랜드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서 8년간, 특히 더플라자 호텔 리뉴얼 프로젝트를 통해 형성된 브랜딩 철학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컨시어지 업무로 시작했는데, 이후 PR 담당이 되어 마케팅팀으로 옮기게 됐어요. 그런데 PR이 저한테는 그렇게 잘 맞지 않더라고요. PR은 뒷단의 일을 하는 거잖아요. 이미 만들어진 걸 홍보하기보다는 좀 더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플라자 호텔 리뉴얼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제가 그동안 카피라이팅도 많이 했고 멤버십 매거진도 혼자 만들어보고 했던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로고도 만들어야 되고 론칭할 때 마케팅도 해야 되고 이름 지을 것도 많은 상황에서 '글 잘 쓰는 애면 좀 잘하겠다'라고 평가해 주셔서 참여하게 됐어요. 사실 재미있어 보였고, 너무 해보고 싶어서 제가 먼저 손들고 지원했죠.


당시만 해도 호텔 업계에서는 '브랜딩'이라는 개념이 많이 없을 때였고, 전문가도 없었어요. 뭔가 브랜드적인 게 필요하다는 니즈는 계속 있는데 이론적인 것도 없고 해서 그때 제가 책도 많이 사서 보고 사회교육원 프로그램도 많이 가면서 정말 맨땅에 헤딩하면서 배웠어요.


레스토랑 리뉴얼, 스파 오픈, 웨딩 상품 개발 등 리뉴얼 프로젝트마다 항상 네이밍과 스토리를 쓸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런 담당으로 참여하면서 브랜딩이라는 걸 알게 됐죠. 이런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브랜딩은 전략적 사고와 실행력이 동시에 필요한 통합적 업무라는 걸 깨달았어요.


더플라자 (사진: 인터뷰이 제공)


이 시기에 형성된 제 브랜딩 접근법의 핵심은 '콘텐츠 중심의 브랜딩'이에요. 호텔에서 매달 발행하는 멤버십 매거진 원고를 직접 작성하고, 고객 노티스와 카피라이팅을 담당하면서 브랜드 스토리를 글로 풀어내는 능력을 기르게 됐거든요.


돌이켜 보면 그때는 콘텐츠 중심으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모든 리뉴얼 프로젝트에 항상 네이밍과 스토리를 쓸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예쁜 말로 만들어줄 사람이요. 이때 깨달은 것은 브랜딩의 본질이 '예쁜 말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발견하고 전달하는 것'이라는 점이었죠.




CJ 푸드빌에서 뚜레쥬르와 비비고라는 서로 다른 사업 모델의 브랜드를 경험하며 얻은 인사이트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 두 브랜드를 동시에 담당한 건 아니에요. 제가 CJ 푸드빌에 입사했을 때가 노희영 대표가 고문으로 오셔서 푸드빌의 모든 브랜드를 리뉴얼하기 시작할 때였거든요. 처음 맡은 브랜드가 뚜레쥬르였고,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에서 브랜드 전략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게 됐죠. 그러다가 플래그십 마케팅과 직영 상품기획까지 업무 영역을 계속 넓혀갔어요.


출산 휴가 후 복직하면서 비비고 마케팅 파트장이 됐는데, 이때의 비비고는 지금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HMR 비비고가 아니라 그 브랜드의 뿌리가 된 레스토랑 비비고였어요. 제가 합류했을 때가 운이 좋게도 레스토랑과 HMR의 통합 브랜딩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여서 비비고 만두 론칭의 처음을 같이 경험할 수 있었죠.


뚜레쥬르와 비비고의 가장 큰 차이는 사업 형태에요. 뚜레쥬르는 프랜차이즈 기반의 사업이고, 비비고는 직영 중심의 글로벌 사업이었거든요. 이 두 모델은 상품 기획과 확장, 마케팅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해요.


뚜레쥬르에서는 베이커리를 처음 해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제품의 양산 공정부터 현장 제조방식과 공장 생산 시스템의 차이점에 이르기까지, R&D팀과의 집중적인 학습과 현장 경험을 통해 베이커리 사업의 운영 체계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빵을 엄청 많이 먹으면서요.😄 플래그십을 통한 브랜드 리뉴얼도 처음 경험해 봤고, 상품 기획까지 담당하게 되면서 마케터로서의 역량을 크게 넓힐 수 있었어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비비고에서는 사업적인 경험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었어요. 당시 비비고는 한국에 10개 정도, 글로벌에 미국, 영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일본, 중국까지 총 6개국에 진출해 있었거든요. 매장 수는 20개도 안 됐는데 6개국에 나가 있었으니까 글로벌 사업이 얼마나 복잡한지 직접 경험할 수 있었죠.


특히 CJ 그룹의 전략적 브랜드로서 '맥도날드 같은 한식 QSR'을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진행되던 프로젝트여서,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각 국가별 현지화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또 너무 빨리 확장하다 보니 비즈니스적으로는 건강한 구조가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이 두 브랜드 경험이 현재까지 가장 큰 자산이 되는 부분은 사업 모델에 따른 마케팅 접근법의 차이를 체득한 거예요.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주들의 수익성과 운영 편의성을 고려해야 하고, 직영은 브랜드 일관성과 고객 경험에 더 집중해야 하거든요.



이니스프리 플래그십에서 오프라인 공간의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구현하셨나요?


제가 이니스프리 CEO 면접을 볼 때, 제 이직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어요. 저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라고 하셔서 "돈도 되지 않고 투자비도 큰 플래그십을, 그것도 F&B 콘텐츠를 넣어서 운영하시는 목적이 뭡니까?"라고 질문했거든요.


당시 CEO인 안세홍 대표님의 답변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계윤숙님이 여기 와서 할 일은 정확히 하나다. 이니스프리 플래그십에 고객이 앉아서 메뉴를 먹으며 '아 이게 이니스프리구나'라고 5초만 생각하게 해도 된다"였어요.


플래그십 이니스프리 카페의 모든 메뉴는 하나하나 존재 이유가 분명해야 했어요. 이니스프리의 브랜드 가치인 Green과 제주를 모두 담거나 둘 중 하나를 뾰족하게 담고 있어야 했고, 이니스프리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제품들의 특징이나 컨셉을 담아야 했거든요.


덕분에 제주를 속속들이 뒤지고 다녔어요. 제주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니스프리의 핵심이 제주였으니까요. 모든 메뉴의 원료는 제주에서 가져오고 레시피는 되게 그린하게 풀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비주얼은 이니스프리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담으려고 삼박자가 갖춰지도록 굉장히 노력했죠.


이니스프리 오가닉 그린 카페 (사진: 인터뷰이 제공)


메뉴 기획마다 "이 메뉴가 왜 있어야 하죠?"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답이 명쾌해야 했어요. 메뉴뿐만 아니라 공간 디자인, 사용 소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브랜드 스토리의 연장선이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디테일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완성도 추구는 필수였어요.


이 경험을 통해 디지털 전환 시대에도 F&B 산업의 본질은 여전히 오프라인 경험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온라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물리적 공간에서의 감각적 경험과 정서적 연결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봐요.


온라인은 오프라인 경험의 접근성을 높이고 확산시키는 강력한 채널 역할을 하지만,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와 깊이 있는 경험은 결국 오프라인 공간에서 완성되죠. 이러한 철학이 이니스프리에서 더욱 견고해졌어요.



앨리스나인에서 가장 큰 수확은 무엇이었고, 이것이 현재 F&B 마케팅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요?


앨리스나인은 사실 컨설팅 회사에요. 이 회사의 전신이 플랜즈 어워드라고 국내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 중에서는 업력도 오래되고 괜찮은 회사였거든요. 풀무원, 하림 같은 식품회사들의 컨설팅도 많이 하면서 동시에 뷰티 브랜드 인큐베이팅도 하는 곳이었죠.


저는 여기서 인큐베이팅하고 론칭하는 뷰티 브랜드들의 마케팅 담당으로 입사했는데, 사실 뷰티 브랜드 자체보다는 컨설팅 회사의 일하는 방식에서 훨씬 많이 배웠어요.


사진: Unsplash


처음에 그들이 보고서 쓰는 방식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달랐거든요. 저는 계속 인하우스 마케터였고, 솔직히 컨설팅 회사를 되게 싫어했어요. '실무도 모르면서 몇천만 원씩 받아 가고 보고서만 던져주면 결국 우리가 다 실행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제가 그 앞단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더라고요. 저는 실행력은 높았지만 전략적 분석 능력은 부족했거든요.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고 분석해야 하는지, 기존에 갖지 못했던 관점들을 갖는 방법을 많이 배웠어요.


앨리스나인에서 가장 많이 배운 건 '기획의 기술'이에요. 마케팅 전략에 접근하는 방법론 자체가 인하우스 마케터로서는 접하기 힘든 테크닉이었거든요.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한 보고서 작성 기술 같지만, 사실 이건 전략적 사고의 토대가 없으면 불가능해요. 우리가 컨설팅 회사를 쓰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결국 이런 체계적인 접근 방법이 부족하기 때문이거든요.


의외로 대기업 마케터들도 보고서를 쓸 때 단위 업무나 결과물 중심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컨설팅에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야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배우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니스프리에서도 느꼈지만, 상품 중심의 뷰티/식품 브랜드와 공간 경험이 중요한 F&B 브랜드는 DNA가 완전히 달라요. 사업 구조 자체가 다르거든요. 이 부분은 CJ에 있을 때 푸드빌(매장 운영)과 제일제당(제품 제조)의 체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이미 느꼈던 경험이기도 해요.


뷰티 브랜드는 제품 자체의 성능과 브랜드 이미지가 핵심이에요. 반면 F&B는 맛이라는 기본기 위에 공간에서의 경험, 서비스,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브랜드 경험을 구성하죠. 훨씬 복합적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많아요.


이때 배운 전략적 접근법이 마케팅 리더가 되었을 때 저만의 큰 차별점이 됐어요. 특히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구조화하는 능력이 많이 늘었거든요.



지앤푸드에서 굽네의 "바사삭 유니버스" 캠페인을 기획하셨는데, 기존 브랜드를 새롭게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지앤푸드가 운영하는 ‘굽네’라는 기존 치킨 브랜드가 가진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브랜드 캠페인을 접근했어요. "바사삭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을 만든 거죠.


당시 굽네가 가지고 있던 과제가 명확했거든요. 오븐구이 치킨의 차별점을 제대로 소구하고, 20대 신규 고객들을 확보하는 것이었어요. 생각보다 굽네가 '구운 치킨'이라는 걸 모르는 고객이 많았고, 그냥 고추바사삭, 볼케이노 같은 대표 제품들의 맛으로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구웠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하고 바삭하다는 인식도 심어주고 싶었어요.


제가 마블을 좋아해서 팀원들과 전략을 짤 때 페이즈별로 기획했어요. '구울레옹'이 주인공인 페이즈 1에서 시작해서, 중간 단계에서는 모베러 웍스 그룹과 콜라보해서 고추바사삭 캐릭터도 만들었죠.


정말 특별했던 게 치킨 회사지만 홍대에서 치킨을 팔지 않는 팝업을 해보자고 했어요. "우리는 여기서 굽네 세계관만 팔 거야, 스토리만 팔 거야"라고 했죠. 너무 비싼 성수는 못 가고 홍대에서 열흘 정도 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걸 경영진이 보시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이렇게 브랜딩도 할 수 있는 거야, 오프라인 공간도 생기고"라고 하시면서 플래그십을 만들려고 하신 거예요. 지금도 홍대에 굽네 플레이타운이 있어요. 솔직히 저는 조금 반대했거든요. 제가 이미 플래그십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이니스프리, 비비고, 뚜레쥬르에서 봤듯이 굉장히 소모적인 마케팅이거든요. 지속 가능하게 하기가 쉽지 않고 투입되는 비용이 너무 많아서 금방 끝나버릴까 봐 걱정했어요.


홍대 굽네 플레이타운 (사진: 인터뷰이 제공)


실제로 5년 중장기 로드맵에 따라 3단계 페이즈를 설계했지만, 1.5페이즈 시점에서 캠페인이 중단된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에요. 엔데믹 특수로 굽네가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가 급격한 매출 하락을 겪으면서, 경영진의 우선순위가 브랜드 빌딩에서 즉시적 프로모션으로 회귀했거든요. 결국 "위기 상황에는 아이돌 마케팅이 최선"이라는 전통적 접근법으로 돌아간 거죠.


물론 단기적 매출 반등 효과는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현재, 과거처럼 유명 연예인을 활용한 TV 광고만으로 브랜드 인지도나 매출에서 드라마틱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10년 전과 달리 소비자들의 미디어 소비 패턴이 극도로 분산되어 있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 형성 방식 자체가 변했거든요.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브랜딩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예요. 특히 단기 성과 압박이 있는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죠. 결국 브랜딩은 자산이 쌓여야 하고 히스토리가 쌓여야 하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해요.



경력 중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경력 중 가장 큰 위기는 이니스프리에 있을 때였어요. 저는 항상 일이 재밌었고 새로운 걸 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니스프리에서는 처음으로 리더십에 대한 깊은 좌절을 경험했거든요.


이니스프리에서 낯선 카테고리의 업무 환경에서 팀장을 맡게 되면서 팀장으로서 고립된 섬 같은 존재가 됐어요. 모든 동료들이 화장품 업계 출신인데 저만 F&B(식료품) 업계 경력을 갖고 있다 보니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F&B 사업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모든 일을 다 제가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팀원들한테는 자유도를 많이 줬지만, 돌이켜 보면 조금 방임하는 리더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어요. 일을 맡기고 마음에 안 들면 제가 다 해결하고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실제로 리더십 평가도 되게 안 좋았어요.


또 제가 이전 회사들에서는 항상 가장 주목받는 마케터로 일했는데, 이니스프리는 아모레퍼시픽 그룹 내 여러 브랜드 중 하나다 보니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었어요. 특히 제가 담당하는 F&B 플래그십은 메인 비즈니스가 아니어서 더욱 그랬고요. 팀장으로서도 엄청 미숙했던 것 같아요. 처음 1년은 재미있고 정신없이 다녔지만 그 뒤 2년 정도는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조직에서의 제 포지셔닝과 리더십에 대해서 엄청 고민했어요. 그래서 제가 컨설팅 회사로 가게 된 이유도 있었고요. 거기선 혼자 일을 할 테니까요. 그때 안 읽던 처세술(리더십) 책도 읽고 인간관계 책도 읽으면서 온갖 시도를 다 해봤는데, 한 번 틀어지니까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이 경험이 오히려 저에게는 큰 자산이 됐어요. 이후 입사한 지앤푸드에서는 훨씬 잘할 수 있게 됐거든요. 팀원들을 성장시키는 데 훨씬 더 포커스를 맞췄고, 팀원들을 어떻게 코칭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동기부여를 많이 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더 강해졌고요.


지앤푸드에서는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팀원들이 대부분 젊었는데, "우리도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다들 많이 성장해서 그중 몇몇은 더 큰 회사로 이직하기도 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리더로서 행복하고 뿌듯했죠.



설빙에서의 마케팅 리더십과 사모펀드 기업의 일하는 방식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설빙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중장기 사업 계획이 매우 명확하다는 것이었어요. 각 본부가 달성해야 할 성과와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합의했고, 마케팅 퍼널처럼 각 밸류체인에서 실행해야 할 과제와 시점까지 세부적으로 정리해서 트래킹하고 있거든요.


사실 사모펀드 인수 기업에 대한 우려가 컸어요. 단기 수익 창출에만 집중하고 장기적 브랜드 가치보다는 재무적 성과만 추구할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설빙에 오기 전까지 계속 고민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완전히 달랐어요.


오히려 대기업에서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었어요. 대기업에서는 목표가 모호하고 전략이 수시로 바뀌어서 중장기적 추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거든요. 아무리 치밀하게 중장기 계획을 세워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빈번했어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반면 설빙은 목표의 지향점이 뚜렷해서 구체적인 전략 목표들을 설정해놓고, 스타트업처럼 지속적으로 회고하면서 전략을 수정하고 맞춰가고 있어요. 브랜드 성장을 위한 투자와 추진력도 과감하고, 문제점을 빠르게 포착해서 보완하며 지속적인 성과 리뷰를 통해 결과물의 수준을 높여가죠.


무엇보다 목표와 전략, 프로세스 중심으로 업무를 추진하다 보니 구성원 동기부여도 수월하고, 업무 지시나 리뷰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에요. 현재 경영진들의 합이 잘 맞는 것도 큰 도움이 되고 있고요.


브랜드의 3개월 후, 6개월 후, 1년 후, 3년 후의 모습을 뚜렷하게 그려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F&B를 기반으로 브랜드, 상품, 공간,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하는 마케터"라고 하셨는데, 이 중 어떤 영역에 가장 열정을 느끼시나요?


브랜드 기획부터 시작한 커리어 덕분인지, 브랜드 기획에 대한 애정이 가장 깊어요. 신규 브랜드 론칭도 의미 있지만, 특히 브랜드 리뉴얼 작업을 더 선호해요. 그 브랜드가 축적해온 히스토리와 숨겨진 면모들을 탐구하고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거든요.


제가 브랜드 리뉴얼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숨겨진 자산을 발견해가는 재미 때문이에요. 브랜드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스토리나 가치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설빙의 경우 특별히 흥미로운 점이 있었어요. 다른 브랜드들과 달리 특정한 정서적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았거든요. 고객들은 주로 '빙수 브랜드'로 인식하며 메뉴 자체에 집중해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설빙만의 독특한 특성을 발견했어요. 대부분의 카페가 1인 중심으로 개인화되어 있는 반면, 설빙은 유일하게 '소셜한' 브랜드였거든요. 함께 나눠 먹으며 웃고 떠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어요. 이번 리뉴얼은 바로 이런 잠재되어 있던 감성적 자산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죠.


결국 브랜딩은 발명이 아닌 발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데이터와 직감이 상충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판단하시나요?


저는 의사결정할 때 직감보다는 체계적인 검증을 중시해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철저히 확인하는 편이거든요. 메뉴 개발의 경우 매장에 직접 가서 현장에서 고객들에게 물어보는 일이 빈번하고, 소비자 패널 조사도 여러 차례 진행해요. 최소 80% 이상의 검증이 확보될 때까지 끝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최종 결정을 내리죠. 그렇다고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검증도 빠른 시간 안에 끝나고 테스트 론칭도 많이 해봐요.


설빙이 이런 검증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전문점 카테고리가 장기간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탕후루 전문점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경우가 많고, 빙수 전문점들도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했어요. 그런데 설빙이 이렇게 오랫동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메뉴 기획을 정말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설빙 메뉴에 대한 충성 고객들도 상당히 많고요.


저는 제 직감을 크게 신뢰하지 않지만, 아이디어 창출에는 적극적이에요.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R&D팀에 과감한 시도를 장려하고, 최종 결정 단계에서는 반드시 고객 검증을 거치도록 해요.


설빙에 합류해 보니 R&D와 마케팅 조직에 고객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더라고요. 소비자 패널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직영점을 운영하는 덕분에 매장에서 신메뉴에 대한 즉각적인 고객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요.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프로토타입 단계가 체계화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정식 상품화 전에 프로토타입을 신속하게 제작해서 테스트하고, 고객 피드백을 받아 보완한 후, 다시 테스트하고 또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런 빠른 검증과 개선 사이클이 매우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의사결정의 정확성과 속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죠.



마케팅 팀의 창의성을 높이고 빠른 실행을 독려하는 본인만의 리더십 방식은 무엇인가요?


저는 팀원들에게 빠른 실행을 적극 독려하는 편이에요. 창의력과 아이디어 발굴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향상된다고 믿거든요. 이론적 학습보다는 실제로 많이 보고, 먹고, 경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시장 감도를 높이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다양한 장소를 직접 방문해 봐야 하죠.


아이디어가 나오면 즉시 실행해 보도록 격려해요. 상사와의 공감대 형성 없이 진행하면 시간 낭비가 되니까, 제 사무실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어요. 팀원들이 언제든 편하게 와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좋다고 판단되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죠.


사진: Unsplash


창의력과 경험 확장을 위해 시장 조사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어요. 다행히 저희 대표님이 마케터 출신이어서 이런 투자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적극 지원해 주세요.


국내 시장은 트렌드를 체계적으로 수집해서 지역별로 분석하고, 배달 앱을 통해 주 2-3회 경쟁사 제품을 주문해서 품평회를 진행해요. 해외의 경우 푸드 박람회 참가를 적극 지원하는데, 제가 합류한 6개월 동안 직원들이 벌써 세 군데 정도는 다녀왔을 거예요.


"내가 아는 걸 여기 계신 분들이 모른다면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항상 눈과 귀를 열고 핫플레이스가 생기면 반드시 직접 가보라. 좋든 싫든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라고 강조해요.



건강 트렌드 시대에 디저트 브랜드인 설빙은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고 계신가요?


이 부분은 어렵지만 반드시 다뤄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건강 트렌드라고 하면 유기농 원료나 칼로리 저감, 비건 레시피처럼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를 설빙에 무리하게 접목하면 오히려 매력 없는 메뉴가 나올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미국의 더치 브로스라는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어요. 이들은 건강을 단순한 영양학적 개념이 아닌 '긍정적 에너지'로 재정의했거든요. 더치 브로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활기찬 에너지와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포지셔닝했어요. 그들의 'Love Afair'라는 서비스 철학처럼 고객이 방문하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지도록 하는 거죠.


특히 Z세대들이 에너지 넘치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선호한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더치 브로스의 직원들은 단순한 바리스타가 아니라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커뮤니티 빌더 역할을 하면서 강력한 브랜드 팬덤을 형성했거든요.


사실 사람들이 당분을 섭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단순한 영양학적 건강보다는 정신적 웰빙, 즉 기분 개선과 스트레스 해소 측면에서의 건강을 부각시키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설빙의 본질적 특성인 '함께 나눠 먹으며 웃고 떠드는' 소셜한 경험 자체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거잖아요. 우리 브랜드 본래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도 이런 접근이 더 자연스럽고, 로우슈가나 저당 제품의 실제 건강 효과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다만 소비자들의 현실적 니즈도 무시할 수 없어요. 우선 저당 옵션처럼 소비자가 개인 취향에 따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을 이번 여름부터 점진적으로 도입하고 있어요.


저당 요거트 아이스크림 토핑 (사진: 인터뷰이 제공)


적용이 용이한 메뉴부터 저당 옵션을 빠르게 제공하고, 장기적으로는 컨셉과 완성도를 모두 갖춘 저당 또는 헬시 빙수 라인업도 개발해 볼 계획이에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설빙만의 '행복한 에너지'를 통한 정신적 웰빙을 건강의 새로운 정의로 제시하고 싶어요.



다양한 F&B 브랜드를 경험하셨는데, 설빙만의 독특한 브랜드 DNA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F&B 시장에서 단일 메뉴 중심의 전문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생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트렌드의 수명이 짧을 뿐만 아니라 확장성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스타벅스나 투썸플레이스 같은 대형 카페 브랜드들을 보면, 커피에서 시작해서 티바나, 프라푸치노, 스무디, 푸드, 디저트, MD 상품까지 다양한 카테고리로 확장하며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해왔어요.


반면 설빙은 '빙수'라는 매우 제한적인 카테고리에서 출발했어요. 이는 브랜드 확장에 있어 가장 큰 제약이자 동시에 도전 과제였죠. 빙수는 커피처럼 습관적 소비가 어렵고, 사이드 메뉴와의 결합도 쉽지 않은 구조거든요. 고객들이 다른 것을 주문하다가 빙수를 추가하는 게 아니라, 빙수를 먹기 위해 목적성을 갖고 방문하는 소비 패턴이니까요.


설빙도 한때 브런치 메뉴, 식사 대용 메뉴, 사이드 디저트 등 다양한 확장을 시도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빙수 브랜드'라는 핵심 정체성에서 멀어질수록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경험했죠.


대신 설빙은 "빙수" 자체의 개념을 혁신적으로 재정의했어요. 설빙 이전까지 빙수는 단순히 제과점의 사이드 메뉴에 불과했는데, 이를 당당한 "프리미엄 디저트"로 격상시킨 거죠.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인절미부터 10대가 열광하는 초콜릿과 젤리, 20~30대가 좋아하는 생과일과 프리미엄 소재까지, 각 연령층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토핑을 '빙수 위에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고객층을 확장해온 거예요. '제품군의 확장' 대신 '소재와 경험의 확장'을 통해 브랜드의 한계를 돌파한 셈이죠.


설빙 스페셜 메뉴 (사진: 설빙)


설빙만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은 고객층의 다양성이에요. 일반적인 디저트 카페는 20~30대 여성 고객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데, 설빙 매장에 가보면 가족 단위, 연인, 심지어 남성들끼리 온 고객들까지 정말 다양해요.


이는 설빙이 가진 메뉴의 '공유성'과 '소셜한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카페가 1인 중심으로 개인화되어 있는 반면, 설빙은 여전히 '함께 나눠 먹으며 웃고 떠드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거든요. 이런 소셜한 경험 자체가 설빙만의 고유한 브랜드 DNA라고 할 수 있어요.


설빙의 특별함은 '제약이 있는 메뉴'에서 시작했지만, 오히려 그 메뉴를 끊임없이 혁신하며 한계를 정면 돌파해온 전문성과 뚝심에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이런 '함께 먹어서 행복한' 브랜드 경험을 더욱 강화하면서, 설빙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소셜 디저트 경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에요.



설빙 리뉴얼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 분석 방법을 사용했고, 내부 이해관계자들과는 어떻게 협업했나요?


저는 브랜드 리뉴얼에서 두 축의 데이터 분석을 중시해요. 외부적으로는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언급하는지, 내부적으로는 각 부서가 보유한 핵심 브랜드 자산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거죠.


설빙의 경우 다양한 소비자 조사 방식과 기존 리뷰, SNS 콘텐츠를 빅데이터로 분석했어요. 특히 고객들이 설빙을 어떤 맥락에서 언급하는지, 어떤 감정과 연결해서 이야기하는지를 세밀하게 추적했죠.


분석 결과 정말 독특한 패턴을 발견했어요. 일반적인 브랜드들은 BPI(Brand Perception Index) 조사에서 "따뜻하고 세련되고 트렌디한" 같은 정서적 형용사들이 나오는데, 설빙은 그런 정서적 이미지가 거의 없었어요.


고객들은 주로 '빙수 브랜드'라는 기능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특정 메뉴에 집중해서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매장 환경이 다소 올드하더라도 고객들이 그것을 부정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브랜드의 정서적 측면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거죠.


설빙 여름방학 메뉴 (사진: 설빙)


하지만 더 깊이 분석해 보니 설빙만의 독특한 강점들이 드러났어요. 브랜드가 기능적으로 빙수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 자체가 오히려 명확한 자산이었고, 무엇보다 카페 디저트 브랜드 중에서 유일하게 '공유하며 먹는' 소셜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핵심 발견이었어요.


각 부서가 가진 브랜드 자산들도 체계적으로 정리했어요. 기존 캘리그래피나 소프트한 시각적 요소들은 브랜드팀에서, 우유, 얼음, 팥, 인절미 같은 오리지널 소재들은 상품개발팀에서 관리하고 있었죠. 이런 자산들을 그대로 활용하되, 표현 방식과 톤 앤 매너만 더 해피하고 프렌들리한 방향으로 조정했어요.


일반적인 브랜드 리뉴얼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경쟁사 대비 차별점을 찾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설빙은 명확한 경쟁자도 없고 시장에서 특별히 포지셔닝을 재설정할 필요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브랜드가 이미 가지고 있지만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장점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어요. 새로운 것을 발명하기보다는 기존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접근법이었죠. 이런 방식이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훨씬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어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이번 리뉴얼의 컨셉 슬로건은 "Happiness taste Sweet"이에요. 설빙에서 고객들이 이미 느끼고 있는 정서적 감정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었거든요. 설빙과 고객들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설빙에서 느껴지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더 분명하게 전달하는 마케팅을 지향해요.


앞으로는 플래그십, 팝업 같은 다양한 형태의 오프라인 경험도 고민하고 있고, 고객들이 직접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캠페인도 구상하고 있어요. 결국 데이터를 통해 발견한 설빙만의 '소셜하고 행복한' 브랜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예요.



최근 F&B 산업에서 가장 파괴적인 혁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설빙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변화는 "원천 기술의 상향평준화"와 그 기술이 거의 "오픈소스화"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쉽게 말하면, OEM이나 ODM 기반의 생산 시스템이 널리 퍼지면서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가진 제품을 비교적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거죠.


이는 K-뷰티의 인디 브랜드들이 OEM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던 화장품 시장의 흐름과 매우 유사해요. F&B 업계도 이제 그와 같은 성장 사이클에 진입하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요즘 떠오르는 브랜드들을 보면, 노티드의 GFFG나 런던 베이글뮤지엄의 LBM, 성심당 같은 브랜드들이 브랜드 감도나 팬덤 면에서 CJ나 SPC 같은 전통적인 대형 기업들을 능가하는 사례들이 많이 보여요. 빠르고, 뾰족하고, 엣지 있게 움직이는 스몰 브랜드들을 대기업이 쫓아가는 구조가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기에 F&B 마케팅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해요. 푸드테크도 정말 매년 다르게 실제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고, 로봇이 단순 서비스를 넘어 조리까지 대체할 정도니까요. 설빙도 자동화 관련 고민들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저는 조수용님의 "일의 감각"이라는 책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어요. "작은 브랜드처럼 행동한다는 건 불특정 다수가 아닌, 의식 있는 소수가 열광하는 부분을 찾아 이를 실천한다는 뜻이다. 큰 브랜드처럼 생각한다는 건 업에 진심인 사람들이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안정감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큰 브랜드는 작은 브랜드처럼 행동해야 하고, 작은 브랜드는 큰 브랜드처럼 생각해야 한다."


저는 이 문장이 지금의 설빙 마케팅에 딱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부산의 작은 카페에서 시작한 설빙은 이제 10년이 넘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큰 브랜드"가 됐어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시장 안에서는 "작은 브랜드처럼 날카롭게 움직이고" 싶거든요.


설빙 연혁 (사진: 설빙)


고객이 열광하는 지점을 좁고 깊게 파고들고, 그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

브랜드에 대한 책임감과 안정감을 갖고 큰 브랜드답게 성실하게 진화해 가는 것.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설빙이 앞으로도 F&B 시장 안에서 독보적인 포지셔닝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결국 기술의 평준화 시대에는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와 고객과의 진정성 있는 연결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설빙만의 독특한 소셜 디저트 경험을 바탕으로, 작고 날카로운 혁신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것이 저희의 대응 전략이에요.



한국적 디저트 브랜드로서 설빙의 해외 시장 진출 전략에 대한 본인만의 비전이 있으신가요?


설빙은 'Korean Dessert Cafe'라는 슬로건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코리안'이라는 단어는 장점만큼이나 제약도 함께 따라오는 단어예요. 자칫하면 전통적인 이미지에 국한되기 쉽거든요. 한복, 한옥, 전통 떡, 고전적인 감성... 물론 그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브랜드를 확장하거나 동시대 고객들과 호흡하려면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전통'보다는 동시대성, Contemporary에 주목했어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K-Culture의 본질도 사실 현재 대한민국의 트렌드에서 비롯되잖아요.


예를 들어, 미국 마트에서 김밥이 품절되고, 맨해튼 중심가에 삼겹살집이 성공하는 현상은 단순한 전통문화의 확산이 아니에요. 현재 한국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식문화가 실시간으로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신호거든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따라서 설빙도 과거의 전통을 복원하는 방식보다는, 동시대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디저트 트렌드와 식문화 코드를 브랜드 경험 전반에 반영하는 전략을 택했어요. R&D팀이 "전통 떡 문화를 연구해야 하나요?"라고 고민할 때마다, 저는 명확하게 답해요. "지금 한국 소비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요소들을 설빙만의 빙수 언어로 해석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코리안 디저트의 정체성"이라고요.


이 전략은 한국 시장에서도 중요하지만, 해외 확장에서 특히 유효해요. '전통적인 한국'보다는 지금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이것이 설빙이 지향하는 코리안 디저트 카페의 문화예요.


실제로 해외 글로벌 파트너들도 지금 한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거 달라고 그래요. 현지화된 메뉴들보다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메뉴들을 세팅하는 걸 훨씬 선호하거든요. 현지화가 필수 요소였던 10년 전의 글로벌 진출과는 정말 다른 환경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어요.


지금 설빙이 샌프란시스코에 매장이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글로벌 전략은 진행하지 못했거든요. 현재 미국 시장 글로벌 전략을 다시 짜고 있는데, 각 지역만의 특별한 소재들을 한국적 방식으로 해석해서 빙수에 접목시키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설빙이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디저트 경험'이에요. 이것이 설빙만의 차별화된 글로벌 진출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마케팅 리더로서 자신의 직업적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계신가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영역이나 분야가 있으신가요?


저는 마케팅이 정말 좋아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정보를 얻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마케팅의 영역이 지치지 않게 흥미롭거든요. 이니스프리에서 처음 리더가 됐을 때, 필드 플레이어처럼 실무를 놓지 못해 굉장히 힘들었던 경험이 있을 정도예요.


이런 마케팅에 대한 애정이 더욱 확고해진 계기가 CJ푸드빌에서 근무한 경험이에요. 당시 극악의 난이도와 극강의 업무량을 소화해야 했는데, 우박처럼 쏟아지는 모든 피드백과 업무 지시가 철저히 "고객"과 "시장" 중심이었거든요.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경험이 제 마케터로서의 DNA가 됐어요.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있는지, 왜 좋아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뭘 불편해하고 있는지, 왜 불편해하고 있는지... 저는 그게 브랜드와 마케팅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직장 생활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관리 업무에만 매몰되는 임원은 되고 싶지 않아요. 시장 변화에 대한 민감도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마케터로 남고 싶거든요.


임원의 본질적 역할이 사업 비전 수립과 조직 간 시너지 창출이라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기획과 실행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더라고요.


새로운 도전 영역을 굳이 찾는다면, 언젠가는 책과 요리가 어우러진 복합 문화공간을 운영해 보고 싶어요.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키친 스튜디오가 결합된 형태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허브 같은 공간이요.


사실 이것도 마케팅의 본질과 맞닿아 있죠. 결국 사람들의 잠재된 니즈를 발견하고 그에 맞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니까요. 저에게 마케팅은 단순한 직업적 영역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 그것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구현하는 삶의 철학에 가까워요.


※ 오늘의 큐터뷰는 조인후 작가님이 작성하고, 큐레터가 편집했어요.




지난 큐터뷰 보러가기 👀

큐터뷰 #23. 마케터는 이성과 감성이 딱 반반씩 필요하다(솔루엠 김민영 CMO)

■ 큐터뷰 #22. 마케팅은 고객의 체감으로 완성된다(보나비 최승희 CMO)

■ 큐터뷰 #21. IMF 때 미국으로 간 청년, CIA와 FBI의 극비 프로젝트를 맡다(JLB인터내셔널 제이슨 리 대표)

■ 큐터뷰 #20. 착한 척으로는 브랜드가 커지기 어렵다(톤28 박준수 공동대표)

■ 큐터뷰 #19. 브랜드는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VOTTA 대표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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