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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바이러스 (좋은 글)

2007.10.30 08:03

신용성

조회수 2,755

댓글 1

제목없음

진(Gene)과 밈(Meme)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이 있다. 제목처럼 책에는 자극적인 문구가 많이 있다. 내용도 참신했지만 자극적인 문구들이 사람들을 홀리고 있었다. 이기적인 유전자,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니. 사람들은 책의 제목부터 호기심이 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와 제목이 있고 그 다음에는 논란이 따랐다. 책의 주제 역시 유전자와 진화에 관한 것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발끈하리라는 것을 저자는 미리 알고 있었다.

책은 “우리는 유전자를 위한 생존 기계이다”라는 주제로 시작한다. 그 이전부터 닭과 계란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 있었는가라는 주제가 있었지만 도킨스 식으로 말한다면 닭(생명체)은 계란(유전자)을 위한 생존 로봇이 된다. 모든 것의 중심은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단순한 설명은 유전자가 단독으로 작용하는가와 같은 복잡한 질문에 이르면 애매하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스스로를 환원론자로 자처하며 강렬한 주장을 쏟아내는 저자에게 사람들은 논쟁을 하면서도 휘말려 들어갔다. '낚였다'라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 경우일 것이다. 이런 경우 제목은 하나의 화두로 볼 수 있다. 도킨스는 사람들을 홀린 후 자기의 생각을 주입했다. 유전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일에 성공했다.


 


도킨스는 책의 후반부에서 밈(meme)이라는 개념을 적었다. 문화적인 유전자 또는 정신적인 유전자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컴퓨터의 기억장치인 메모리(memory)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도킨스에 따르면 밈은 밈을 추종하는 사람을 매개체로 전파하며, 사람은 밈의 코드를 복사함으로써 생물학적인 진화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전자(gene)는 일종의 4진법 코드로 구성된 컴퓨터 파일을 닮았다. 생물은 유전자를 해독하고 복사하여 퍼뜨린다. 사람들의 생각과 활동은 밈을 증식시키고 교환한다. 밈은 전염력이 있고 스스로 복사되어 퍼지며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밈은 옥스포드 영어사전에도 단어로 수록되었다. 어쩌면 밈이라는 용어 자체가 또 하나의 밈이라고 할 수 있다. 도킨스 이후 밈은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남용되었다.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밈의 예로는 노래, 사상, 선전문구, 패션, 도자기를 굽는 방식, 건물을 건축하는 양식 등이 있다. 밈은 은유적으로서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내 마음에 풍부한 밈을 실었다면 문자 그대로 여러분은 내 머리에 기생한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유전적 메커니즘으로 기생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밈이 전파되는데, 이때 뇌는 중간 매개물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단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나중에는 밈이라는 단어가 도처에서 사용되었다. 흔한 용법이 어떤 밈을 전염시킨다는 것으로 사람들이 어떤 사상이나 풍조에 동조하고 생각의 전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정치나 경제는 밈을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는 강제를 통하여 사람들을 묶어두려 하거나 한 정치가나 정치집단의 사상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지나간 세대의 패러다임을 끊임없이 납득시켜 수긍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세뇌시켜 버리기도 한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기업의 이념같은 것을 만들어서 회사의 이념을 주입시키고 세뇌시킨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을 감염시킬 밈들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며 감염이 되면서도 밈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함석헌 선생의 노자 <도덕경>강의에서는 정치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뜻대로 살게 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밈의 지배다. 단적인 예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초기작인 <개미>에 ‘좀비현상’이 나온다. 이를테면 어떤 개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양들이 뜯어먹는 풀 더미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가? 사실 그 개미는 기생충에 의해 머리가 감염된 것이다. 기생충이 양의 내장으로 들어가 자신을 복제하기 위해서 개미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양의 내장에서 기생충의 알이 부화되어 다시 복제된다. 감염된 개미는 기생충에 의해 통제된다. 기생충은 자신의 번식방법으로 개미의 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일들은 실제로 존재하며 어느 날 우연히 진행된 사이클이 정착된 것이다. 집단적인 동물의 세계가 되면 필연적으로 밈은 강제된다. 다른 개체의 사고가 나를 제어한다는 의심은 정도가 심하면 정신분열증의 증상으로 분류된다. 서로 얽혀있는 네트워크 그물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행사한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당연히 갖게 되며 밈은 감염의 단위이다. 밈에 감염되어 사람들이 좀비 달팽이 같은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전파되는 밈
미디어가 바뀔 때마다 그 미디어에 맞는 밈이 번성했다. 예전에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루터의 밈과 결합했다. 루터는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미디어해커라고 볼 수 있었다. 루터는 자신의 투쟁 도중 숨어 지내던 기간에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사람들은 직접 성서를 읽었고 루터의 밈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 후의 결과는 종교혁명과 종교폭동 그리고 종교전쟁으로 나타났다.

밈의 지도가 바뀐 것이다. 그후 마르크스나 다른 혁명가들이 펜을 칼보다 무섭게 사용했다. 이들에게 도서관과 인쇄기는 밈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가장 중요한 무기였으며 마찬가지로 통치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통치수단이었다. (요즘은 인터넷과 방송도 있다.) 미디어는 ‘밈의 전쟁’을 벌이는 공간이다.

감기에 걸리는 것이 실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밈의 감염이 일어난다. 전염력을 가진 바이러스처럼 밈은 머리에서 머리로 퍼진다. 아이디어의 단편 같은 것이 사람들 속에서 발전하고 정치가나 작가의 밈이 수백만 명의 의식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밈은 집단을 만나면 집단의식의 모자이크 속에서 자란다. 집단 지도자의 밈이 바뀌면 집단의 정신 유전자 지도가 바뀐다. 적개심과 경쟁심, 그리고 생존 본능의 자극은 밈의 성질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유전자들의 생존경쟁처럼 머릿속 생태계에서 경쟁한다. 요즘의 밈은 전자메일로도 전염될 수 있으며 인터넷을 보는 것만으로도 퍼질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밈은 더 빨리 자란다.

어떤 사람들은 바이러스적이고 감염력이 있는 바이러스적 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디어 활동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이 활동은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을 만큼 감염력이 있어야 한다. 호소력같은 표현은 이런 경우 너무 점잔은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감염되고 다른 곳으로 마구 퍼뜨리고 다니는 감염력 정도는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에 사용하건 문화 활동에 사용하건 감염력이 강한 것이 필요하고 이런 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파고 들어가거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기술이다. 밈이라는 용어를 빼고 생각한다면 아주 오래된 기술이다.

바이러스

지난번에 썼던 <집단정신의 진화>에서는 지배적인 세력의 아이디어가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메카니즘을 적었다. 사람들을 무의식적 동조경찰로 만들어서 지배적 아이디어에 반대하는 일들을 탄압하는 메카니즘이다. 강력한 동조신호에 둘러싸이면 반대자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구성원들은 지배적 밈의 소리를 되풀이한다. 사람들의 카피된 목소리를 여러 번 듣다보면 아무런 갈등 없이 노래처럼 따라 부르게 된다. 동조신호다.

현재의 문화코드는 70년대에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고 한다. 미국이 체제경쟁과 군비확산에 몰입하던 억압적 분위기에서 60년대와 70년대의 바이러스적 밈들이 자랐다. 락이나 펑크같은 아트가 당시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자연발생 하듯 나타났다. 다른 하위문화들도 나타났다. 당시로서는 도발이었으나 그때의 문화코드는 이제 주류다. 전설적인 락 가수나 반전운동가를 반사회적으로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생태주의자도 요주의인물이었고 환경운동가들도 위험한 사람들이며 사회를 위협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이들을 이상하게 보던 진정한 이유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풍조에 스스로 감염되었다. 갑갑한 체제를 스스로 고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열광과 수용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이 문화코드로 비즈니스를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과거의 체제를 고집하고 반대되는 코드들을 주장하는 것은 다시 소수가 되고 영향력을 줄이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동조경찰과 자원집행자는 다시 새로운 문화코드로 노래를 부른다. 그렇다면 누가 옳은지는 잘 알 수 없다. 냉전을 만든 사람들 역시 그 이전 세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었다. 현재 세대의 주력은 70년대 당시에 반전 데모를 하고 히피를 동경하던 세대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주력인 386세대도 한때는 저항적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현재의 문화코드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알기 힘들다.

당시 사상적 감염을 막으려는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이런 일은 곧잘 일어난다.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에 열광하거나 갑자기 새로운 스타일이 유행하며 기존의 산업이 힘을 잃는다. 사람들을 새로운 것에 빠지게 하는 것은 감염이다. 사상이나 스타일이 바이러스적인 데가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람들을 감염시킬 능력을 말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바이럴 밈을 기다린다. 감염될 준비도 되어있다. 바이러스적 아이디어들은 사람들을 파고든다. 그리고 아이디어들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그 바이러스에 걸려 보아야 알 수 있다. 감염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다. 실제의 세포에서도 감염과 재감염 그리고 변형된 감염은 되풀이된다. 면역 시스템은 동원훈련을 받는다.

실제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을 갖고 있고 겉에는 당이나 단백질의 표면이 있다. 바이러스는 세포에 붙어 자신의 코드를 주입시켜 많은 복제가 일어나게 한다. 바이러스를 바라보는 항체나 세포는 주로 바이러스의 표면을 본다. 그것은 바이러스의 스타일이다. 항체가 보는 것은 표면이다. 사실 DNA까지는 잘 모른다. 이 정도만으로 충분히 구별을 하고 있다.

문화에 밈에 대한 항체는 그 문화에 대한 스타일과 외면을 본다. 그러나 감염은 코드가 주입되면서 일어난다. 표면에서는 세포를 홀린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색상과 스타일로 유혹하는 패턴은 많다. 하지만 정작 새로운 밈에 감염성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하지가 않다.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려면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사람들은 선입견과 편견이라고 부르는 바이러스 항체를 갖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감염성 밈의 시작은 어렵다. 새롭기는 하지만 도저히 사람들이 수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포기해 버리면 기존 시스템의 승리다. 그리고 표면에서 강한 거부가 일어나면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디어 바이러스

만약 감염이 중요한 것이라면 방법이 중요하다. 실제의 바이러스처럼 기존의 미디어 대한 공격의 방법들이 있다. 기존의 질서체계가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미디어 활동가들이 여기에 저항하는 방법과 예들을 적어놓은 책이 있었는데 그 제목이 <미디어 바이러스>였다. 책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통제하는 기존의 시스템과 세력이 있고 이들이 선동과 여론조작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기존의 미디어들을 발전시켜왔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매트릭스의 설정에 나는 음모론 같이 보이는 이런 시각은 어느 정도는 분명히 사실일 것이다. 정책의 선전이나 마케팅을 위해 만든 기술적 방법들이 체계적으로 발전해왔으며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 공간인 데이터스피어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발전을 거듭한 나머지 기술들은 통제권의 범위를 벗어나 대중들에게 힘과 권한을 벗어나 원래의 목적과 반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대기업들은 사람들을 세뇌했다. 미디어들은 소비주의와 구매욕을 부추기기 위해 봉사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힘을 행사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판매에 열중했던 대기업들은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세요” 라는 수준까지 사람들에게 영합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시장을 문화를 제공하고 미디어와 대등한 공생관계이자 거꾸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세대가 나타났다. 미디어에 대해서는 불손하고 거리감과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기존의 미디어 전략은 통하지 않으며 미디어의 내용을 그대로 믿지도 않는다. 미디어를 조작하는 수단마저 꿰뚫고 있다.

미디어 역시 너무 복잡해져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하나의 자연이나 환경과 같이 변했다. 미디어 활동가들은 예전보다 덜 무력감을 느껴도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비디오 게임의 젖줄을 먹고 자란 세대가 미디어에 대한 저항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들은 컴퓨터를 접하고 자랐으며 물론 미디어를 이용할 줄도 안다. 티모시 리어리는 이런 것들을 새로운 시대의 LSD라고 평가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요즘은 블로그도 있고 UCC도 있다. 통제는 더 어려워진 것이다. 과거의 미디어 활동가나 이론가들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무기들이 사람들의 손에 쥐어졌다. 과거에 비디오카메라로 찍던 영상들은 이제 손바닥에서도 찍힌다. 방송국 수준으로 가공할 수도 있고 통제가 어려운 채널을 통해 수백만명이 볼 수도 있다. 포털을 통해 사진이나 비디오 클립이 퍼져나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잘 모른다. 나비효과는 언제나 일어날 채비가 되어있다.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나 퍼스컴들이 일종의 컬트로 간주되었다면 이제는 다시 모든 것을 평가할 준비도 되어있어야 한다. @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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