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저녁에 트랙 위를 달리기 시작한 게 1~2달 남짓 됐습니다. 물론, 10km도 버겁습니다. 그래도 집 근처에 경기장이 있어 트랙이 잘 조성되어 있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발 맞추며 뛰는 ‘러닝크루’도 자주 눈에 띄더라고요. 문득 저를 포함해 사람들은 왜 러닝에 열광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러닝인구 1000만 시대
“러닝인구가 1000만이 됐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는 약 5175만 명입니다. 대략 5분의 1 정도가 달리고 있다면 상당한 숫자인데요. 이렇게 러닝이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건강이죠. 달리기는 체중관리, 심혈관 기능 개선, 근력 및 지구력 증진 등 종합적으로 우리의 신체를 건강하게 돕습니다. 물론, 잘못된 자세, 무리한 강도 등 오히려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하지만요. 더불어 우리나라는 ‘관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것,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도 많이 신경 쓰죠. 한국인이 ‘갓생’의 아이콘이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또한 달리기는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완화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효과적입니다.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운동화와 실행력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죠. 헬스, 클라이밍 등 다른 운동과 단순하게 비교하더라도 회원비, 장비 등 비용 걱정이 덜하고요. 그리고 비교적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혼자라면 스스로의 체력에 맞춰 달릴 수 있고 함께라면 유대감을 쌓고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해나갈 수 있죠.
기안84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도 영향을 미친 듯 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연예인, 인플루언서들의 러닝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고 있어요. 평소 달리기가 취미였던 기안84는 지난해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4시간 47분만에 완주했습니다. 당시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기안84는 건강 문제와 공황장애 극복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고 삶을 지탱하는 요소였다고 밝혔습니다. 이외에도 가수 션은 광복절을 맞아 81.5km를 완주하는 ‘815런’을 진행하며 러닝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기도 했죠. 미디어에 민감한 2030세대는 트렌드를 빠르게 수용하는데요. 지난 4월 열린 JTBC 고양 하프마라톤, 10월 5일 열린 YTN 마라톤의 참가자 약 60%가 2030세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인적인 경험도 덧붙이자면 달리는 동안에는 걱정보다는 ‘숨이 찬다, 좀만 더 뛰자’ 이런 생각만 하게 되니 현실적인 문제들을 잠시나마 제쳐둔 느낌입니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달까요. 하루 종일 보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는 것도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러닝 붐이 가져온 바람
폭발적인 러닝 인기는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선 국내에 있는 마라톤 대회는 콘서트 티켓팅처럼 치열한 전쟁터가 됐죠. 얼마 전 추가 모집을 진행한, 3대 마라톤이라 불리는 ‘JTBC 서울 마라톤’을 직접 신청해봤으나 결제화면이 나오기도 전에 선착순 마감됐습니다. 또한 금천구에서 진행하는 ‘금천구청장배 건강달리기 대회’는 메달도 기록칩도 주지 않지만 950명 모집에 10만 명 이상이 몰리기도 했는데요. 참가비 1만 원을 내면 보쌈·막걸리 등을 무제한으로 제공하죠. 이외에도 우아한형제들의 ‘장보기 오픈런’, 롯데타워 계단을 오르는 ‘스카이런’ 등 다양한 이색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러닝용품에 대한 열기도 뜨겁습니다. 특히 장시간 달려야 하는 러닝은 관절, 발 등 신체를 보호해줄 수 있는 러닝화의 중요성이 높은데요.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9월 러닝화가 포함된 운동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5% 대폭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디다스, 아식스, 뉴발란스, 온러닝 등 주요 브랜드의 일부 제품은 웃돈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확인되며 30만원이 넘는 금액임에도 정상가에 구매하기 어려워졌죠. 지난해 전체 운동화 시장은 4조 원에 달하는데 이중 러닝화 시장은 1조원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부 러닝화 브랜드는 고공행진하는 실적에 맞춰 주가도 크게 올랐는데요. 온러닝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상승해 약 8700억 원을 기록했는데 아시아태평양 시장의 매출은 약 74%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온러닝을 운영하는 ‘온홀딩스’는 올해 초 25달러 수준에서 10월 7일 기준 51달러로 치솟았고요.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말 한국 법인 ‘온코리아’를 설립하는 등 한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한편, 스포츠용 웨어러블 기기들도 인기를 끌고 있죠. ‘가민’의 스마트워치는 특히 우수한 배터리 성능으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2분기 기준 매출은 약 2조 원으로 애플과 삼성전자에게 위협을 줄 정도인데요. 또한 20만 원을 웃도는 ‘새티스파이’ 티셔츠를 비롯해 고가의 러닝용품들도 인기가 높습니다.
크루의 양면
동시에 함께 달리는 일종의 커뮤니티이자 모임 ‘러닝크루’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트랙이 있는 곳이라든지, 달리기 좋은 한강 등에서 줄지어 달리는 러너들의 모습을 자주 확인할 수 있죠. 신체적·정신적으로 좋은 스포츠이자 유대감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다만,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많게는 수십 명이 동시에 달리다 보니 일부 러닝크루에서 좁은 레인을 점령하거나 큰 소리를 내는 등의 행위가 발생했고 시민들은 불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장, 운동장 등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친다거나 별도의 훈련을 위해 일부 공간을 점거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 거죠. 아예 도심 속에서 차선이나 인도를 차지하고 뛰는 경우도 종종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원이 잇따르자 일부 지자체는 직접 나서기도 했는데요. 서초구는 지난달부터 5인 이상 달리기 제한 조치를 시작했습니다. 4명을 넘길 경우 인원 간격을 2m 이상 유지해야 하며, 러닝 유료 강습도 제한됩니다. 이외에도 송파구는 석촌호수 산책로에 ‘3인 이상 러닝 자제’, 성북구에서는 ‘우측 보행·한 줄 달리기’ 현수막을 내걸었죠. 또한 일부 러닝크루에서는 소그룹 편성, 고성방가 금지 등 자체적으로 규칙을 세워 불편을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운동장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도 존재하고요.
사실 자세히 보면 비단 러닝크루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자전거를 여러 명이서 함께 타면서 차로를 점령하거나 비키라고 소리치는 등의 경우도 존재했죠. 또한 개인적인 경험을 들면 클라이밍 크루에서 한정된 벽을 점령해 일반 회원들이 이용하기 어렵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크루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안 좋은 인식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아쉽죠.
그렇지만 러닝 트렌드에서 크루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마라톤 대회를 주최하는 것도 그렇고 러너들의 사회적인 연결을 위한 기업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거든요. 대표적으로 나이키는 ‘나이키 런 클럽(Nike Run Club)’을 통해 러닝을 게임처럼 만들고 일종의 러닝 커뮤니티를 구축했습니다. 기록을 지인과 비교할 수 있고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하고요. 이후에는 다양한 러닝 관련 콘텐츠,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소비자를 연결하고자 하는 사례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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