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상품의 바다에서 뭘 고르지?” “쇼핑 큐레이터 믿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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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국내 오픈마켓인 G마켓에서 지갑을 검색하면 2만8000여개 상품이 검색된다. 또 다른 오픈마켓인 11번가에서 티셔츠를 검색하면 114만개가 넘는 상품이 검색 결과로 제시된다. 미리 생각해두었던 상품이 있다 해도 수많은 상품 목록에서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고르기까지는 적잖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검색과 클릭을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상품을 선택해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과연 내게 맞는 상품일까?’

◇상품 선택 길잡이 큐레이션=‘상품의 바다’ 전자상거래(e-commerce) 시장에서 큐레이션 커머스(Curation Commerce)가 길잡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큐레이션(Curation)은 본래 ‘돌보다’ ‘보살피다’는 뜻의 라틴어 ‘Curare’가 어원이다. 통상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큐레이터가 일정한 주제에 맞춰 작품이나 소장품을 선별해 기획·전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등 디지털 환경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정보 수집·해석·배포 주체로서 사람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의미가 확장됐다. ‘큐레이션 : 정보 과잉 시대의 돌파구’의 저자 스티븐 로젠바움은 큐레이션을 “일상을 압도하는 콘텐츠 과잉과 우리 사이에 인간이라는 필터 하나를 더 두어서 가치를 더하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한다.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를 선별하는 것이 정보 생산 못지않게 중요해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정보 선별에 대한 요구는 전자상거래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수천만 가지 상품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골라줬으면 하는 소비자 요구가 커지면서 큐레이션 커머스 개념이 등장했다. 패션에서 제조 유통이 일체화된 SPA 브랜드가 대세를 이루는 것처럼 대부분의 상품 교체 주기가 빨라진 상황에서 상품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 과거와 달리 사용자들의 상품 후기 같은 다양한 정보가 너무 많아진 것도 믿을 수 있는 조언자에 대한 갈증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서비스가 구독형 쇼핑(Subscription Commerce)이다.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금액을 지불한 고객에게 전문가의 큐레이션을 통해 선별된 제품이 배송된다. 고객은 사이트 방문 시 입력한 개인 정보를 토대로 큐레이터가 추천한 물품을 받아볼 수 있다. 2010년 미국에서 시작한 버치박스(Birchbox)가 최초 형태로 알려져 있다. 버치박스는 매달 10달러를 내면 4∼5개의 미니어처 화장품(정품 용량을 줄여 만든 제품)과 샘플을 보내준다. 고객은 싼 가격에 제품을 써보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다.

이 밖에 슈대즐(Shoedazzle)은 구두, 크래프트커피(Craftcoffee)는 커피를 배송하는 등 다양한 제품군에서 서비스가 확대됐다. 유명인이 직접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신뢰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분기에 한 번씩 다양한 제품군을 추천하는 쿼털리코(Quarterly.co)의 경우 유명 패션 잡지 ‘엘르’ ‘마리 클레르’의 패션 디렉터를 지낸 니나 가르시아 등이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해외의 경우 이미지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핀터레스트(Pinterest)’ 등에서 호응을 얻은 상품이 판매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미국에서 페이스북에 이어 두 번째로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키는 SNS인 핀터레스트가 큐레이션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국내도 큐레이션 표방 서비스 잇따라=국내 큐레이션 커머스도 아직 규모는 작지만 해외와 유사한 서비스를 잇따라 시도하고 있다. 2012년 2월 서비스를 개시한 ‘미미박스’는 버치박스와 유사하게 매달 일정액을 내면 화장품을 받아볼 수 있는 구독형 쇼핑 서비스다. 해외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아 미국 등에도 진출했다. 또 아침마다 유명 빵집의 빵을 배달해주는 ‘헤이 브레드’, 임산부를 위해 매달 필요한 상품을 배송하는 ‘텐박스’ 등도 서비스 중이다.

구독형 쇼핑은 아니지만 ‘바이박스’의 경우 쿼털리코와 유사하게 유명인을 포함한 큐레이터들로부터 패션 및 생활 용품 등을 추천 받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8월 새롭게 리뉴얼 한 후 매월 평균 100% 매출 신장을 기록 중이다. 양현강 바이박스 마케팅 이사는 “고객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큐레이터를 통해 상품을 추천하고 있다”며 “자신에게 맞는 큐레이터를 고를 경우 해당 큐레이터의 추천 상품을 계속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밝혔다.

기존 오픈마켓이나 소셜커머스의 큐레이션 기능 역시 강화되는 추세다. G마켓은 지난해 4월 상품 담당자들이 상품을 선별해 추천하는 서비스인 ‘G9’를 선보였다. G9는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5시 두 차례에 걸쳐 상품 30개를 추천한다. 5000만개에 이르는 전체 상품 중 그날그날에 맞는 추천 상품을 골라 구매를 유도한다. 올해 3분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75% 성장했고, 전 분기에 비해서도 약 40% 정도 늘어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1번가도 올해 1월 특가 기획전이었던 쇼킹딜을 ‘쇼킹딜 11’로 개편해 큐레이션 서비스로 확대했다.

이혜영 G9 마케팅실 팀장은 “2012년 사업성을 검토할 때 큐레이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쇼핑정보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일일이 가격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게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PC보다 모바일 비중이 늘고 있는 것도 큐레이션 강화의 배경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크기가 4∼5인치인 상황에서 많은 상품을 한꺼번에 검색해서 보여주는 것보다 소수의 상품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것이 상품 거래에 유리하다.

출발부터 상품기획자(MD)의 역할이 컸던 소셜커머스도 덩치가 커지면서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셜커머스가 처음 출발할 때는 소비자들이 모든 거래 건수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판매 상품 수가 크게 늘어 소수의 상품을 집중해서 노출할 필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롯데닷컴도 지난해 8월부터 담당 MD가 상품과 배송준비를 확인한 후 해당 상품을 고객에게 추천하는 ‘MD가 간다’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처음에는 신선 식품만 대상으로 했다가 점차 대상을 넓혀 지난 7월부터 유아동 상품까지 확대했다. 13일부터는 의류 가구 등으로도 확대 시행하고 있다. MD가 직접 현장을 찾아 관련 영상과 이미지를 올리면서 신뢰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오픈마켓이 표방하는 큐레이션 커머스가 가격 이점을 내세우던 소셜커머스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국내 오픈마켓이나 소셜커머스는 고객 취향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보다는 추천 상품이 얼마나 더 싼가를 두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빅데이터 등 관련 기술 진전에 따라 보다 진전된 형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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