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스팸 문자도 ‘감성’ 자극… 금칙어 뚫기 위해 광고 무관한 시적 표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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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 없이 문자를 드리게 돼 대단히 송구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글로 인해 빚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넓은 아량 부탁드립니다.”

직장인 박모씨(29)는 최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채무를 한 곳으로 통합해 관리하라고 권유하는 ‘스팸 문자’였다. ‘간편 대출’ ‘부채 해결’ 같은 메시지와 전화번호가 붙은 기존 대출 권유 스팸 메시지와 달랐다. 문학적 표현을 사용한 호소가 구구절절 이어졌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찾아야 하는데 닫힌 문만 바라보는 미련함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숨죽이고 울었던 고객님의 동공에서 보석 같은 이슬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위 번호로 상담주세요.” 박씨는 “스팸 문자 주제에 쓸데없이 심금을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짧고 선명한 단어로 순간적인 클릭을 유도하는 대신 문학적 표현으로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성 문자메시지나 댓글이 나타났다.

감성 스팸은 “즐거운 주말입니다” “스팸 문자에 시달리셨어요? 염치불구하고 보냅니다” 등의 인사말이나 사과로 시작한다. “힘든 시대에 잘 버텼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위로하며 대출이나 금융상담을 권유한다. “창밖을 봐.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며시 흔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등 광고 내용과 무관한 구절도 사용한다.

‘감성 스팸’은 금칙어를 뚫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와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매달 집계하는 소비자들의 스팸 차단 금칙어 목록은 ‘고객’ ‘당일’ ‘상담’ ‘팀장’ ‘인터넷’ ‘현금’ ‘금융’ ‘최저할인’을 포함한다. 이 같은 단어를 넣지 않으려고 문학적 수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공정거래위원회 사이트를 통해 광고전화 수신거부를 등록했지만 이 스팸 메시지는 걸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책 <대출 권하는 사회> 저자 김순영 박사는 “감성 스팸 피해자 역시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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