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또 카피 다 지우셨어요…?”
지윤은 민재의 말에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왜?
문장 하나로 누군가를 움직이려면,내 마음 열 번은 헤집어야 하거든.”
민재는 멋쩍게 웃으며 캔커피를 건넸다.
“그러다 선배마음이 먼저 헝클어지겠어요.”
지윤은 커피를 받고, 작은 한숨을 섞었다.
카피라이터 7년 차, 연애는 끝났고…
이별 후유증은 카피에 묻어나는 중이었다.
오늘도 광고주는 이렇게 말했다.
“감성은 있는데요… 가슴이 안 떨려요.”
“한 줄로 누군가를 붙잡아야 해요.”
'붙잡는 문장'이라…
나는 정작 그 사람 하나도 못 붙잡았는데.
그날 밤.
지윤은 조용히 문서를 열었다.
화면엔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보낸 카톡 하나 안 읽으면서…
광고엔 한 줄 더 쓰라 하고.
세상,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아?”
민재는 그녀 옆에서 말없이 앉아, 과자 봉지를 뜯었다.
“저는 선배 문장 읽고 처음 울었어요.
…그 사람은 바보죠.”
지윤은 조용히 웃으며 키보드를 쳤다.
이번엔 진심을, 자기 자신에게 썼다.
“당신이 떠난 자리에
나는 나를 심었습니다.이제, 나라는 계절이
피어날 차례입니다.”
문장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누구를 위한 카피를 써왔는지.
이젠 자신을 위한 문장을 쓸 시간이었다.
광고는 공개되자마자 대박이 났다.
“읽고 울었어요”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캡처했어요”
댓글마다 사람들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다, 도착한 메시지 하나.
[그 사람]
“그 광고… 너지?”
지윤은 화면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문장…
네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어서 쓴 거야.”
답장은 짧게.
“응.
하지만 너한테 보내는 말 아니야.
나한테,
오래 기다려준 나한테 해준 말이야.”
며칠 뒤, 민재가 물었다.
“선배, 그 문장…
진짜로 선배를 살렸나요?”
지윤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응.
누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껴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
민재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누가 또 선배를 사랑하게 되면 어떡해요?”
“음… 그땐 그 사람이
내 문장보다 더 좋으면
받아줄까?”
“그럼, 저…
열심히 글 써야겠네요.”
그 순간,
지윤의 눈빛이
살짝, 아주 살짝 흔들렸다.
2년 뒤, 지윤은 회사를 떠나
‘문장 그리고 커피’라는 감성카페를 운영 중이다.
카페 벽엔 손님들이 남긴 문장들이 가득 붙어 있다.
그리고 간판 위, 이렇게 적혀 있다.
“문장 하나로,
마음이 피어나는 날이 있다면오늘이 그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민재는 커피를 배달해주러 온다.
라떼 위엔 라떼아트처럼,
작은 쪽지 하나가 놓여 있다.
“오늘도 문장 예쁘네요.
혹시…
내 마음도 카피해 주실 수 있나요?”
지윤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한다.
“마음은 복붙 안 돼요.
정성껏 써야 해요.”
그날 이후,
그녀는 매일 누군가를 위한 문장을
한 잔의 커피처럼 따뜻하게 내리고 있다.
“문장 하나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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