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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은주의 추억(허 민/문화일보 정치부 차장)

2005.03.12 09:58

신용성.

조회수 9,635

댓글 2

배우 이은주의 죽음은 현대인의 25%가량이 일생에 한번은 경험한다는 우울증에 대해 다시금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필자 허민(문화일보 정치부 차장)은 다산연구소로 보낸 특별기고를 통해 우울증은 마음의 병 혹은 의지박약에서 비롯된 병이 아님을 강조하고, 순수한 영혼들이 비운의 선택을 강요받지 않도록 따스한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길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산연구소는 특별기고의 형식을 빌려 회원여러분께 이 글을 보내드립니다.- 다산연구소-


<배우 이은주의 추억>


이은주, 재즈, 하루키


배우 이은주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난 몇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2004년 10월 어느 날,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은주는 많이 야위어 보였다. 영화 주홍글씨 촬영을 마친 그는 평소 보다 체중이 6킬로그램이나 줄었다고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소 의외였다. "지난 1년 동안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이 여러 번이나 됐어요." 난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힘들었나 보군…' 넉 달이 지난 후 난 가슴을 쳤다. 그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더라면….

내가 아는 이은주는 이지적인 분위기에 차분한 성격을 지닌 독특한 매력의 배우였다. 그는 성실한 신앙인이었고 음악을 사랑했고 와인을 즐겼다. 소설 읽기도 생활의 일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언젠가 재즈 이야기로 시작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로 대화를 이어간 일이 있었다. 그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나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젊고 고독한 주인공들,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우울증과 상실감을 지닌 젊음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루키적 사고와 감정의 세례에 익숙해져 있다는 말도 했다.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재즈, 베니 굿맨의 'Bluebirds In the Moonlight'나 냇 킹 콜의 'Embraceable You' 등을 흥얼거리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죽음에 이르는 병


이은주의 자살 원인에 대한 많은 얘기가 오가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은주가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주변에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에 미뤄 우울증을 겪은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남긴 글에서 그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혼자 버티고 이겨보려 했는데…힘든 세상이야' 등 자신의 한계상황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 정신과 전문의인 한 친구의 말. "중증 우울증일 경우 상당수 사람들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그중 적지 않은 수는 실제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 어떤 면에서 자살은 우울증의 말기증상이라고 할 수도 있어."

이은주는 병사(病死)했다. 독해서, 모질어서, 자신의 생명을 끊는 그런 죽음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와타나베는 우울증에 걸린 여인 나오코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 우울증이라는 정신의학적 측면을 떼어놓고 보면 이은주 죽음의 '비밀'은 풀리지 않는다. 호사가들이 유명배우의 자살 배경을 알아내는데 모든 정력을 쏟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질없는 상상력만 키울 뿐이다.



그가 남긴 것


우울증은 특수한 누구만의 것이 아니다. 일생 동안 우울증을 경험하는 수가 인구의 4분의 1이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에 인류를 괴롭히는 10대 질병 중 하나로 우울증을 꼽았다. 미국 보건당국은 2020년엔 전 세계에서 우울증을 앓는 환자수가 심장병 다음으로 많을 것이라는 보고를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마음의 병이나 의지박약으로 비롯된 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울증은 뇌질환이다. 아무리 살려고 노력해도 뇌가 외면하면 고만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풍토다. 이런 상황에선 안타까운 희생이 늘 수밖에 없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우울증으로 치료받아야 할 사람 가운데 겨우 10%만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적기에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는 병인데도…. 이은주의 죽음을 접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 탓"이라며 가슴을 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내 주위를 더욱 따스한 시선으로 돌아보도록 하고 있다. 나와 나의 가족, 나의 친구와 나의 이웃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자. 순수한 영혼들이 비운의 선택을 강요받지 않도록. 하루키가 전후 일본의 황금시대에 모든 것을 바치듯 자살한 나오코를 위해 '노르웨이의 숲'을 펴냈듯, 우리도 한국영화의 전성시대에 불꽃 같이 자신을 태운 이은주를 위한 레퀴엠을 써야 하지 않을까.

[이 게시물은 신용성님에 의해 2005-05-27 07:44:09 인터넷창업(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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